こころ
왜 간다고 했을까? 아무렴... 알아서 잘했을 텐데. 우리는 무엇 때문에 여기 사는가? 축구를 하기 위해서? 아이작 아시모프를 만나기 위해서? J.R.R 톨킨을 만나기 위해서? 이것이 곧 나이다. 오르한 파묵을 만나기 위해서? 호빗처럼 걸어 다니고 오크처럼 파괴하기 위해서 살아간다. 이언 매큐언은 검은 개를 등장시킨다. 당분간은 아무 목적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닐 계획이다.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이름을 불안으로 적어낸다. 마광수 선생님은 죽었다. 연세대학교의 별은 졌다. 도대체 언더우드의 정신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언더우드 동상은 못내 낡아지고 있다. 이제 조금씩 비와 바람에 깎여 그 모습이 흉측해지고 말았다. 총장님은 비웃는다. 학생의 영혼을 부양할 생각은 하지 않고 여전히 일제 식 공부법을 고수하고 있는 물리학 선생님들. 나는 이미 대학에서 어떠한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것이 나의 솔직한 화법이다. 천재성은 사라지고 있다. 창조성도 사라지고 있다. 마음에서 불어 나오는 그 모든 충만함이 쉴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한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우리 나쓰메 소세키 씨도 그렇게 『마음』을 쓰지 않았는가? 수전 손택은 여전히 자신이 옳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연세대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러나 나의 근본적인 소양을 부양해준 건 강의실이 아니라 도서관이었다. 나는 나 스스로 공부했다. 세상의 이치를 발견하기 위해서 스스로 몸부림쳤다. 세상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애썼다. 도예도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그때쯤 읽었다. 20대 초반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모두 전공 공부에 몰두할 때 나는 잡다한 책들을 읽었다. 그들의 북 커버를 사랑했으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은밀하게 공부했다. 도서관에서 초록색 커버의 『신곡』을 읽을 때쯤 독서의 계절이 다가왔다. 그때쯤 독서의 참 맛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는 수많은 도서관들이 존재한다. 나는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책장에서 뽑아 들었다. 그때쯤 나는 공산주의가 시대에 뒤쳐진 폐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상은 매우 유동적인 것이어서 순간순간 나를 놀래 킨다. 무슨 시답잖은 소리라고 비판하겠지. 그러나 공산주의는 여전히 우리 젊은이의 뇌 가운데 머물고 있다. 집단주의의 세례와 파편들이 부모로부터 상속되어 젊은이 곁에 남아 있다. 망했다! 이건 현실이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자유주의는 언제나 남아 있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