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할 수 있을까? 이제 서른을 앞두고 있는 나에게 스스로 되묻게 되었다. 성장할수록 사람은 더 예민해지나 보다.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 까다롭게 변하고 정작 나를 향한 스스로의 기대치는 낮아진다. 그래서 결혼이 더 두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조금 더 성숙해진 이후에 결혼을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글을 쓰게 되면서 더 예민해지고 섬세해졌다. 아니, 그동안 몰랐지만 난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싶은 건 뻔뻔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나. 너무나 직설적인 나. 싫으면 싫다고 얘기하는 게 이제 나에겐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자랑이 아니라 나는 스스로 너무 독립적인 인간이 되어버렸다. 남들이 볼 때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로 일과 삶을 관찰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항상 지성知性 어린 시각으로 모든 일을 관찰하고 싶고 진실을 말하고 싶다. 왜 이렇게 매사에 진지하며 골몰하냐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해줄 말이 없다. 왜냐하면 그 모습이 원래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나는 거기에 핑계를 대고 싶지 않다. 마그나 카르타 Magna Carta를 선포하는 것처럼 나는 당당히 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남들보다 한 발 더 앞서 진실을 탐구하고 내 앞에 있는 무지無知의 치명적인 덫을 제거하고 싶다. - 어쩌면 이건 나만을 위한 게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해서도 쓰임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정말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다. 냉철하고 진지한 탓에 사랑 따위는 상상하지 말라는 주위의 시선을 거두고. 항상 여자가 남자보다 더 사려 깊다는 편견을 깨고 싶다. 남자도 누구보다 세심하고 민감한 감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나는 '보이지 않는' 위계 hierarchy로 판단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나의 모습에 흠칫 경계심을 품는다. - 이 '보이지 않는' 위계에 대해선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여러분들에게 더 자세히 말해주고 싶다. 나는 나이가 많은 쪽이 항상 위계가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이 위계의 비밀에 대해선 소설 한 편으로 써도 아주 적당한 주제이다. 다른 지면에 또 소개할 기회가 있기를... - 유교의 질서를 깨뜨렸다고 해서 놀라기도 한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버릇없이 군다는 얘기를 듣는다면 나는 이렇게 당당히 말할 참이다. “Mind your own business.” 한국말로는 “당신 일이나 신경 쓰십시오.”이다. 우리나라는 개인을 참 무시하는 나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인의 개성과 성향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오직 업무와 목적을 위해서 모든 사람들의 인격을 평등하게 만들려 한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현상일까?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할 때 비로소 남들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너무 까다로워졌다고 생각되는 나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더 고민하게 된다. 이런 까다로운 나를 받아줄 사람 …. - 사실 남들과 비교해볼 때, 글을 쓰는 일을 하는 것치곤 난 그렇게 까다롭지 않다. 절대로 까다롭지 않다! 나는 예전에도 타인에게 지나칠 정도로 좋은 사람이기를 노력해왔었고, 관대하다는 얘기를 자주 듣곤 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삶의 태도가 꼭 좋은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까다로운 성격이라는 건 문학적으로 표현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옳다고 생각하는 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마이웨이 하는 편이긴 하지만. - 외골수처럼 고집 있는 나를 …. 당당히 사적私的인 이야기를 공적公的이라고 바꾸어 말하는 나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