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nam is dying
수많은 가족들과 친구들이 여기를 걸어 다닌다. 대부분은 여자들이다. 시시콜콜 무슨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일까. 대학로 거리에서 나올만한 것들이 여기에도 머물고 있다. 카페들은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도심 생활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건축구조가 여기 강남 골목엔 있다. 여기서는 음식점과 카페들이 서로서로 상부상조하는 것 같다. 이 상권을 살리기 위해서 건물들은 스스로를 예쁘게 치장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매혹하기 위해서. 현대적인 감각이란 강남 카페에 머물고 있다. 카페의 비대칭적인 계단 구조가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내가 너무 규칙적인 삶에 익숙한 탓일까. 분명 누군가는 여기를 찾아올 것이다. 그 누군가는 신세대의 감성에 목말라 있는 젊은 사람들이다. 강남에서 회사생활을 다녀도 강남의 사치를 누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너무 바빠서 주변을 살피지 못하게 된 탓이리라.
아마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이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업과 직장생활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쉬운 삶을 살 수 있을 테다. 작가 조승연 씨의 『시크하다』에서는 프랑스인과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비교한다. 프랑스인들은 조금 오래되고 낡은 것일지라도 굳이 바꾸지 않고 그것에 익숙해지는 걸 선호한다. 그런데 한국인은 얼리 어답터 early adaptor의 최전선에 서서 자꾸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갱신하려고 애쓴다. 한국인들은 세상의 시류를 쫓아 기술발전으로 이룬 편안한 삶을 추구하려 무진장 고생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편안한 삶과 평안한 삶이 서로 다른 것임을 강조한다. 프랑스인들은 편안한 삶보다는 평안한 삶을 추구한다고 한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본질을 추구하려고 하고 굳이 많은 돈을 벌지 않아도 자신에게 맞는 일이라면 그 일을 계속한다. 아마 우리 한국인에게 필요한 건 인생을 향한 통찰력일지도 모른다. 이타주의가 우리를 삼켜버린 탓인지,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자세히 성찰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기 위해 힘쓰지 않는다. 우리의 영혼은 모두 죽었다. 죽은 영혼들이 둥둥 강남 거리를 배회한다. 인생의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현대성 Modern sense에는 또 다른 이면이 존재한다. 사치스러운 현대성을 추구하다 보면 어느새 사물의 본질을 망각하고 만다. 검은 볼보 Volvo의 정체가 단순히 남성스러움과 세련됨에만 머물고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유명한 차란 그저 사람들이 그 잘빠진 예술에 탄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재규어 Jaguar의 낮은 구조와 듣기 좋은 엔진 소리는 오히려 F1 경주를 생각나게 만든다. 끊임없이 앞서기를 겨루는 시합을 그리워하며 TV를 켠다. 이렇게 좋은 차들은 강남 거리를 다니기에 너무 아깝다. 차라리 수많은 함성과 염원으로 둘러싸여 있는 경주 도로에 있는 게 더 잘 어울린다. 차라리 장 르노처럼 섹시한 배우라면 이 강남 거리를 걸어 다녀도 괜찮을 테다. 소피 마르소의 라붐 La Boum 같은 풋풋함이 전제되어 있다면 무엇이 문제 되랴.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내가 좋아했던 루프탑 조명들은 이제 슬며시 모습을 감추고 있다. 위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남에는 키 높은 건물들이 그렇게 많진 않다. 신논현 역의 교보타워를 중심으로 여러 빌딩들이 줄 서 있지만 중심부를 벗어나면 소소하고 키 작은 음식점들이 기다리고 있다. 강남대로 주위로 때깔 있는 스타벅스가 머리를 내밀고 있고 옷 점포들이 문을 열어두고 있다. 거리에서 멀어질수록 컨트리 감각의 소재들이 들어서고 인간의 촉감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벽돌 건물들이 많아지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된다. 이것이 바로 동심童心을 모방한 자연스러움이다. 조금 더 뒤쪽으로 언덕을 힘겹게 올라가면 사람들이 사는 주택과 조그마한 산이 보인다. 인간의 촉감을 자극하는 정감이란 서로 다른 존재들이 서로 섞이면서 발산하는, 일종의 화학작용과 같다. 빨간 벽돌의 카페는 원래 푸른 리트머스 종이처럼 단단했지만 산성비를 맞아 이제 오래된 빨강 얼굴이 되어버린 것 같다. 물론 이건 나의 상상일 뿐이다.
갑자기 부암동 언덕 꼭대기에 서있던 저택이 떠오른다. 거기는 이승만 연구소였다. 그곳은 근현대의 정치적 향기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다. 푸른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생전에 이승만 대통령이 기거했던 한옥 식 주택이 보인다. 그 모습은 굉장히 고풍스럽다. 앞에는 꽤 넓은 푸른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승만 부부는 그 정원 한쪽에서 옛날에 공작 한 쌍을 기르셨다고 한다. - 이건 정확하지 않다. 내 기억이 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장소에서 들은 것을 잘못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주택 안에는 이승만 대통령에 관한 자료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다. 정치적인 동요를 겪었던 긴 시간들이 여전히 그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나는 그분의 생전 사진의 모습을 바라보며 엄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역사란 이렇게 극명하고도 냉철하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런데 강남에는 그러한 고풍스러운 흔적이 전혀 없다. 한국의 근현대를 느낄 수 있는 어떠한 증거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 거리의 현대성에는 동의하지만 그 역사의 무게에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고작 정감을 느낄 수 있는 자리라곤 테헤란 거리밖에 없다. 그것마저 어느 박물관에 걸려있는 옛 거리의 사진을 보면서 감상할 수밖에 없지만. 차라리 신촌에 있는 김대중 도서관을 이리로 옮기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그 건물의 스타일이나 구조로 봐서는 강남 거리를 꽤나 잘 소화할 것 같은데 말이다. 상상 속에 건축 디자이너가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