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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일본의 심술 본능

by 심재훈

많은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 간의 경제외교 문제가 다시 한번 부각되는 현실 가운데서 한국의 경제상황은 더욱더 악화되어가고 있다. 나라의 상황은 조직의 상황에 반영되고, 조직의 상황은 개인의 상황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국제정치에서 국가는 홀로 살아갈 수 없다. 반드시 주변 국가의 정치력에 영향받기 마련이다. 한국인이 일본인을 바라보는 시각과 일본인이 한국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각 국가마다 서로 다른 내적 성품을 소유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인은 근성이 있고, 끈기 있는 민족성이 있다면, 다소 다혈질적인 단점을 예로 들 수 있다. 일본인은 어떨까? 저자도 대학생 때 일본인을 직접 경험한 것 외에는 딱히 일본에 대해서 잘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 - 대학 동아리에서 만난 그 일본 친구의 이름은 ‘타카’였다. 지금도 잘 지내고 있으려나 -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뉴스와 기사로만 보고, 듣고, 알게 되는 일본인. 언론을 통해서 접하는 일본인의 모습은 현지의 일본인의 모습과 얼마나 닮아 있을까? 일본에 체류한 경험이 있거나,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이 일본과 관련된 업무를 다루고 있다면 그나마 일본에 대한 어색함이 별로 없을 것이다. 작가 본인도 일본에 대해 피부로 체감되는 경험이 없다. 그래서 책을 통해서 일본을 조금 알 수 있었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서 베네딕트는 자신 또한 일본을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그런 점이 일본을 연구하는데 더 유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국은 도통 알 수 없는 일본의 속성을 알고 싶어 했다. 그 당시 일본이란 국가는 왠지 모르게 너무나 가변적인 성격이 강했다. 아무 예고 없이 진주만을 습격하였을 때에, 미국 시민들은 일본에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미국은 세계전쟁에 휘말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본의 공격으로 참전을 결정한다. 미국은 연합국의 핵심이 되었다. 독일도 미국에 소심한 반항은 할 수 있었지만, 일본처럼 본토를 침공하는 대담한 계획은 절대로 세우지 못했다. 이런 면에서 일본인은 참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다. 일본은 전쟁 선포 이후에 뒤따라올 다른 국가들의 2차적인 반격에 대해서는 충분한 고려를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의 모든 외교 정책이 충동적이고 즉흥적이라고 싸잡아 말할 수는 없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진주만 습격은 아주 무모하고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베네딕트는 일본인이 전통적으로 자신이 소속된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굉장히 강하다고 표현했다. 또, 개인이 느낄 수 있는 수치심에 대해 극도적인 경멸감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고 말했다. 쉽게 말하여 일본인은 타인에게 수치심을 느낄 바엔 차라리 사무라이의 할복을 선택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수치에 대한 경멸을 품고 살지만, 일본인에겐 이러한 경향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부탁하는 것을 꺼려하고, 타인의 시선을 극도로 신경 쓰는 모습이 일본인의 한 단면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내적 품성은 여론의 향방을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한국인 또한 일본인과 유사한 성품을 갖고 있다. 한국인은 자존심이 굉장히 강하고, 억척스럽고, 정감이 많다. 일본인과 차이가 있다면, 한국인은 근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한다. 한국인은 공격을 선택하기보단, 상태 유지(status quo)를 위한 방어 전략을 더 선호한다. 내실을 다지는 것을 더 선호한다. 반대로 일본은 역사적으로 과감하고 확장적인 외교 전략을 사용해왔다. 임진왜란 당시 전국 통일 이후 내부적 소요를 멈추기 위한 수단으로 히데요시는 조선을 침략했다. 일본인의 정치 지도자들은 국가의 진보와 발전을 핑계로 대륙을 침략한다. 지금도 아베 총리는 개헌안을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다. 평화헌법을 무효화할 수 있는 방안들을 계속해서 몰두하고 있다.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의 복귀. 그 영광으로 다시 한번 돌아가고자 한다. 국제정치는 역사적으로 회전하는 수레바퀴로 비유된다. 과거의 역사적 실수는 다시 반복된다.

아베의 가문이 전통적으로 극우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극우 병(病). 어쩌면 극우의 만연이 국제정치를 뒤엎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유럽에서의 난민 문제와 더불어 브렉시트(Brexit)를 관통한 고립주의가 한창 유행이다. 나 자신이 가장 잘 낫다는 오만은 국가의 성품에도 여지없이 폭로된다. 국제정치는 힘의 세계가 아니라고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힘과 세력은 논리를 처참히 부서뜨린다. 무역과 교류를 배척하고 혼자 살아남으려는 심보. 고립주의가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자국민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도리이기도하다. 그러나 이러한 혼자 살아남기에도 지켜야 할 윤리라는 게 있다. 이렇게 인류의 공통 선(善)을 무시한 채 달려 나가기만 한다면 이 세상은 약자는 약자대로 실컷 고생만 하다 끝나는, 더 이상 사람들이 제대로 살 수 없는 곳이 되고 말 것이다.








언젠가 남북 이산가족들의 상봉을 TV에서 보며 울컥한 적이 있다. 또, 헤아릴 수 없는 상처를 토로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못내 동정했다. 아픈 역사는 개인에게 아픈 흔적을 남긴다. 나라 전쟁에서 벌어지는 개인의 육체적, 정신적 아픔은 끝내 지워지지 않는다. 60년 동안 갈라진 이국땅에서 피붙이를 보기 위해 달려온 상봉하는 남북 가족들은 다른 이유에서 통곡하지 않는다. 그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내 남편, 자식, 형제, 자매들을 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과거에 대한 미련을 조금이라도 삭힐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엔 새로운 희망이 피어난다. 서로 간에 피어나는 동정과 이해는 아픈 역사를 치유한다.

일본의 입장에선 전쟁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고, 조약을 통해 확립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국제 외교문제에서는 항상 피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보편적인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판단법과 인간 본성 탐구 - 인간이 선하지 않다는 성악설을 바탕으로 토의하자면 - 를 통한 역사적인 관찰법 사이의 괴리가 그것이다. 미국의 베트남 파병 당시 박정희 정부는 한미 간의 경제공조와 외교 회복을 위해 군을 파견한다.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파병 한국군의 잔인무도함에 대해서는 아직도 여러 가설들이 존재한다. - ‘백호’, ‘맹호’ 부대, 이런 이름들이 아직도 세상에 떠돌고 있다는 건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 영화 ‘알 포인트’(2004)는 한국군의 잔인함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나 베트남 전쟁이 국제적인 전쟁이었으며, 그 와중에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되었음을 상기시켜준다. 청룡 백호부대의 활약은 자국을 살리는 하나의 수단이었지만, 베트남 시민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인간은 어떤 시민권을 가지고 있든지, 일단 총을 든 군인의 신분이 되면 이전보다 더 용감해진다. 그것이 나를 지키기 위함이든지, 국가의 안위를 수호하기 위하던지 상관없이 살상은 그들에게 더 이상 무거운 주제가 아니다. 군인은 어쨌든 적이라고 보이는 상대를 죽인다. 이건 전쟁의 역사에서 항상 반복되어 왔다. 왜군들이 조선인들을 죽인 것처럼, 국군도 베트남 민간인을 죽였다. 이래서 역사는 아이러니하다. 이런 이유라면 우리가 지금도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처럼, 베트남 국민들도 우리에게 똑같은 요구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할 자격을 잃어버리는 걸까? 이런 역지사지 접근은 오히려 우리가 오래 잊고 있었던 내면의 죄의식을 상기시킨다.

상황 속의 판단능력은 인간 개인의 생각과 사고의 깊은 심부를 찌르고 판단 명령을 도출해낸다. 한일 간의 역사문제를 언급하고, 한국인 개인으로써의 입장을 주장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움찔한다. 이런 전쟁학적인 역지사지 접근법 – 우리가 일본에게 그렇게 당했듯이, 베트남 국민들도 우리에게 그렇게 당했다는 사실 - 이 가해자로써의 일본을 입증할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오히려 방해하는 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국인도 일본인의 가학행위를 언젠가는 동일하게 저질렀다는 부채의식이 남아 있다. 그래서 현재의 한일 외교문제도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참 막막하다. 희미하게 보이는 실마리라면, 정치인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고, 수출 금지 정책이 잘못된 명분을 통한 억측이라는 입장을 당당하게 표명해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 진정성 있는 사과 표명이 한 일 관계에 ‘필요’ 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 한 가지 분명한 건 식민지 기간에 보여줬던 일본의 만행과 베트남 전쟁에서 국군의 행위는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는 점이다. 베트남 전쟁은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 속에서 어느 한 진영을 수호하기 위해 벌어졌다. 국군은 자유주의 진영 편에서 서서 전투를 이어나갔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중 어느 진영이 더 선하고 옳았는지는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소련이 붕괴되면서 공산주의 진영의 여운은 모두 소멸됐다고 생각한다. 역사가 그걸 증명했다. 일당체제로 살아남은 나라는 이제 중국과 북한, 그리고 몇몇 동유럽 국가들뿐이다. 일본은 제국주의를 숭배했고, 한반도를 넘어 대륙으로 뻗어갔고 무수한 살상을 저질렀다. 이것이 어찌 선한 동기에서 나온 거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난 그럼에도 우리가 베트남 국민들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일본은 우리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는가. 백번 천 번 무릎을 꿇어도 부족하지 않다.








일본은 우리에게 어떻게 사과해야 하는가. 만약 충분한 사죄가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어떻게 ‘용서’ 해야 할까? - 이런 날이 오기는 아직 한참 멀어 보이니 참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 그럼에도 일단 사죄했다고 친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자크 데리다는 「신앙과 지식」에서 외교 간의 분쟁 문제를 놓고 ‘용서’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준다. 해체주의적인 방식을 통해, ‘용서’의 기원을 찾아간다. 그도 신앙적인 용서와 지식적인 용서 간의 괴리감을 느꼈던 것 같다. 신앙적인 용서란 정말 완벽한 사죄를 말한다. 위안부 할머니의 마음이 모두 치유가 될 만큼의 사죄. 완벽한 사죄이다. 반대로 지식적인 용서란 불완전한 사죄다. 피해자들에게 돈으로 보상을 해준들 그 아픈 역사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데리다는 인간은 완전하지 않아서 그 사죄라는 것도 완전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는 얼마나 엄연하고 냉철한가. 한 번 생긴 상흔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이 신앙적 용서와 지식적 용서 사이에서 매일 번민하고 방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최소한에 진실한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할머니들과 우리들이 보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닌가. 할머니들은 돈을 원하는 게 아니다. 당신들의 역사적인 그리고 또 하나로 통일된 진실한 마음을 보고 싶은 거다. 당신들이 한때 개처럼 쫓았던 제국주의가 절대 선하지 않았음을 시인하길 바란다. 당신들이 태양신의 후손이라는 명목 아래에 저질렀던 만행들이 결코 옳지 않았음을 인지하길 바란다. 그리고 높은 자리에 있는 당신들 중 대부분이 아직도 어렵게 만든 평화헌법을 깨고 제국주의의 영광으로 돌아가려는 걸 보니 그저 허무하고 허탈할 뿐이다. 일본의 허무맹랑한 확장 욕구. 전쟁 욕구. 당신들의 심술 본능. 그 오만함. 구토가 나온다.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어떻게 마땅히 이 역사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자크 데리다는 이 두 방식의 용서를 구분하고자 했다. 정치인은 어떠한 용서의 법을 실천해야 마땅한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어쩌면 유동적인 상황에 따라 그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용서의 정치를 펼칠 수 있는 정치인이 필요한 때일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극우 정체성을 훼손시키지 않는 한에서 종종 그들(일본 정치인들)의 정책이 일방적으로 경도된 것임을 지적할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정책과 사상 간의 연관성을 연구하는 것은 일본의 정치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칭기즈칸과 알렉산더 대왕의 대 정복전쟁은 문화의 전파와 영토 확장에 더 큰 명분을 두었다. 아베 정부의 평화헌법 개헌 시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대동아전쟁과 더불어 일본의 큼직한 전쟁은 근본적으로 그들의 선민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영토 확장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동아시아의 가장 큰 형의 역할을 자처함으로써 미개한 중국, 조선, 나아가 동아시아를 통치할 자격이 있음을 스스로 천명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 선생의 「일본 내막기(Japan Inside out)」는 일본의 문화와 속성을 통찰력 있게 서술하였다. 태양신 – 태양신 ‘아마테라스’ - 의 유일한 후손이라는 긍지는 전쟁이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왜곡되고 발현되었다. 각 민족마다 수많은 신화가 존재하지만 신화가 문화에 반영되고, 그 문화가 전쟁을 촉발시키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일본만큼 문화 영역과 외교 영역 간의 유착이 강한 나라도 많지 않다. 신화가 정책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던 여타 국가의 사례를 더 연구하다 보면, 지금의 일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일본의 정책결정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성품과 사고 프레임을 이해하는데 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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