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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

< Christopher Nolan; 상상력. 시간. 복잡한 층위 >

by 심재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상상력은 아름답다. 첫 데뷔작 「미행」은 어떤 오묘한 맛을 내면서 미스터리 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모르긴 몰라도 그의 머리는 아주 복잡한 볼트와 너트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인터스텔라」에 반해 그의 필모그래피를 이제 전적으로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보여줄 게 많은 느낌이다. 그는 감수성 있는 영화보다는 지적 공산물을 창조해내는 걸 더 좋아하는 듯하다. 그는 단선적인 것보다 복잡한 플롯을 더 선호한다.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게끔. ‘영화’라는 것의 의미를 다시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놀란의 영화는 시네마라는 건 우리네 인생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수많은 메시지. 놀란 감독은 영화가 단순히 한 번 보고 지나가는 오락물이 아닌 가슴에 남는 무언가가 되기를 원하는 것 같다.


「메멘토」와 「인셉션」에 이어서 「테넷」이 공개되었을 때 영화 마니아들이 이토록 흥분했던 이유는 뭘까? ‘시간’이라는 테마를 통해 인간의 삶을 다양한 시각으로 해체하고자 하는 그의 영화적 시도는 우리가 마주한 현실 바깥에 또 다른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걸 기대와 설렘으로 받아들이게끔 한다. 그리고 영화의 그런 색다름은 우리에게 익숙했던 모든 것들을 새롭게 환기시킨다.




지금 내가 내린 이 선택은 운명에 가까운 걸까?

아니면 내 자유의지로 이루어진 건가?




놀란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항상 이런 즐거운 고민에 빠진다. 그래서 나의 최애 감독은 여전히 크리스토퍼 놀란이다. 그의 조용조용한 말투, 하지만 그 안엔 거대한 영화적 야심이 느껴진다. 「인셉션」에선 여러 층위의 세계들이 서로를 돕기도 하고 서로를 해치기도 한다. 꿈으로 만들어진 세계. 가끔씩 내가 마주한 현실이 지겹다고 느껴질 때 놀란 감독의 영화를 튼다. 그러니까 현실을 벗어나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가 나를 맞이해줄 거라는 그 특유의 안도감. 난 그게 너무 좋다. 충분한 도피처가 있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현실의 문제를 꿈과 공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놀란의 고유성은 삶에 지치고 끊임없이 새로운 영감을 찾아 헤매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놀란의 이런 미친 플롯 덕분에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나 테드 창 같은 소설가들을 좋아하게 됐다. 하루키나 테드 창이나 이야기가 한 번에 쭉 이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이 세계저 세계의 교류, 만남, 이런 것들을 좋아한다. 혹자는 그들의 작품이 너무 불친절하다고 비판하지만 아마 그들(창작자들) 자신도 이런 걸 모르는 게 아닐 거다. 그러나 그런 불친절함이야말로 세상에서 그들만이 가장 잘 구현해낼 수 있는 것 아닐까. 난 그렇게 생각한다. 쉬운 건 쉬운 대로 좋다. 또 어려운 플롯은 어려운 대로 나름의 매력이 있다. 각자의 취향대로 따라가면 될 일이다. 그리고 자꾸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어려운 플롯에서도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새 놀란 감독의 변호인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놀란 감독이 아이맥스 카메라를 선호하는 덕분에 영화관에서 더 큰 화면과 웅장한 사운드를 만끽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 시설이 가장 좋다는 용아맥(용산 아이맥스 상영관)도 경험해보고. 나는 오늘도 그의 영화를 N차 관람하러 집콕한다. 이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방구석 영화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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