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my Adams; 청초. 카멜레온. 그윽함 >
그녀는 귀엽다. 순수하고 청량한데 약간은 섹시하고 음탕한 구석까지 보인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연기하더니 또 다른 데서는 원숙미가 돋보인다. 이 마녀 같은 여자! 에이미 아담스의 매력은 어떤 연기를 하든지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다. 카멜레온처럼 캐릭터마다 필요한 색깔을 꺼내 보인다. 가끔씩은 그 여성성이 너무 도드라져서 영화를 보는 내내 부끄럽게 만든다.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착한 친한 친구의 누나 같다. 왠지 모르게 남자의 가슴속에 가라앉았던 첫사랑의 향수를 다시 불러온다. 지적이면서도 푸근함 같은 게 있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 중에 가장 좋아하는 건 「컨택트」라는 SF영화다. 그동안 상상해왔던 외계 생명체와는 전혀 다른 햅타포드의 출현은 아직도 너무 신선하고 충격적이다. 이 작품의 감독이 드니 빌뇌브 아닌가! 그럼 말 다했지. 「블레이드 러너 2049」나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같은 수작을 보면 빌뇌브 감독만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영화에선 어떤 극적인 사건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서늘한 서스펜스로 관객을 긴장시키고 놀라게 하기보다는 분위기를 주도하고 특유의 공기로 가득 채움으로써 자연스럽게 우리를 어디론가 인도한다. 다다른 그곳엔 나지막한 기쁨 또는 슬픔이 남아있다. 이런 빌뇌브 식 부드러움은 에이미의 원숙한 연기를 만나면서 한 층 더 깊어진다. 헵타포도는 에이미의 아픈 과거를 어루만지면서도 미래에 일어날 일에 관해서 얘기한다. 헵타포드와 인간은 서로 소통할 수 없다. 서로 완전히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이미는 자식을 잃은 슬픔을 관통해 헵타포드와의 소통을 포기하지 않는다. 인생의 그윽함. 깊이 감춰져 있는 감정을 들춰내는 고통. 에이미 아담스의 얼굴은 이런 고통을 닮아있다. 에이미에게서 할머니처럼 늙은 얼굴이 자꾸 보인다.
반면 초창기 영화 「준벅」에선 그녀의 천진난만함이 돋보인다. 세상 물정을 하나도 모를 것 같은 순진무구함. 하나서부터 열까지 모두 알려줘야 할 것 같다. 어떻게 이런 변신이 가능한지 놀랍기만 하다. 사랑보다 돈과 미래를 선택한 시니컬한 갤러리 관장 역할(「녹터널 애니멀스」)에서부터 음탕하고 탐욕스러운 교주 부인 역할까지(「마스터」). 그녀의 연기 스펙트럼은 끝이 없다. 「마스터」에서 사이비 종교 집단을 위해서 물욕과 색정도 탐닉하는 걸 마다하지 않는 그녀의 연기를 보면 섬뜩하기까지 하다.
주위를 돌아보면 꼭 에이미 아담스 같은 여성이 한 두 명은 있다. 몸매가 반드시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아기자기한 외모에 꼭 한번 힘껏 안아주고 싶은 사람. 그래서 이 여배우가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