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이병헌 마니아들이 분명 있다. 나도 이병헌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그를 연기의 신이라고 부른다. 굵직굵직한 작품들이 많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병헌의 작품은 대부분 흥행엔 그리 성공하지 못했다. 마니아들에게 이병헌 하면 딱 떠올리는 장면은 바로 「달콤한 인생」의 자동차 추격 씬 일 것이다. 싹수없는 녀석들을 아주 달콤하게 추격해 때려눕히고 차 키를 한강에 휙 던져버린다. 구타하는 장면까지 멋있다. 그의 눈빛은 다른 배우들과 사뭇 다르다. 인생의 깊이가 느껴진다고 할까나. 눈빛과 아우라가 버무려지면서 완벽한 형태의 배우가 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악마의 재능이라고 부른다. 여러 가지 루머와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연기력만으로 그 모든 걸 잠식시킬 수 있는 배우가 얼마나 있을까. 「악마를 보았다」나 「싱글 라이더」 같은 작품을 좋아한다. 모르겠다. 눈빛만으로 모든 걸 집어삼키는 것 같다. 연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건 아닐지 걱정될 정도다. 「남산의 부장들」을 같이 찍었던 곽도원 배우는 이병헌을 두고 잘 정제된 다이아몬드 같다고 말하더라. 연기를 하다 보면 배우라는 직업 이전에 자기 모습이 나오기 마련인데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감탄하는 모습이었다.
연기에 재능이 있다는 건 ‘나’라는 자아를 캐릭터에 적절하게 전이시킬 수 있는 게 아닐까. 영화 속 캐릭터는 허구이지만 배우는 거기에 숨을 불어넣는다. 어떤 캐릭터이든지 그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 아마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겐 가당치 않은 일이다.
이병헌의 몰입력은 단연 최고다. 직접 캐릭터의 세계에 들어가 새로운 작품세계를 만들어낸다. 이건 말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엔 예쁘고 잘 생긴 배우들이 많이 있지만 대부분 이름도 없이 사라지지 않는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모두에게 연기의 재능이 있는 건 아니라는 거다. 작품세계에 완전히 나 자신을 담글 수 있는 몰입력. 다른 세계에서 다른 캐릭터로 살아갈 수 있는 여유. 응용력. 공감력. 이 모든 게 뒷받침되어야 한다. 나는 사실 「미스터 선샤인」, 「아이리스」 같은 드라마 연기가 더 좋았다. 각각 고풍 있는 사랑과 끈적끈적한 사랑을 표현하는데 그의 연기만큼은 정말 손색이 없다.
한참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고 싶다. 이병헌이 출연한 작품들은 새드엔딩이 많다. 초등학교 때 집 앞 놀이터에서 한참 동안 「공동경비구역 JSA」의 결말을 곱씹었던 기억이 있다. 나도 모르게. 그리곤 그 어린 나이에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주 철학적인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 나이에 너무 성숙했던 걸까. 한반도 분단과 민주화운동은 내 때엔 이제 고루한 담론이 되었지만 이 땅엔 아직도 그 원혼들이 숨 쉬고 있고 그 상처를 아물게 해달라고 외치고 있지는 않은지 나는 조금 오싹했다. 알 수 없는 정령들이 땅으로부터 나를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세대와 세대 간의 상처. 아픔. 그래서 그 당시 「쉬리」나 「실미도」 같은 영화들이 그렇게 인기가 있었나 보다. 이 땅에 그 아픔은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슬며시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자랐다. 영화는 그 작은 속삭임을 스크린으로 반영한다. 나르시시즘을 먹고 자라났던 ‘나’. 그게 나에게 이젠 그리 어색하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