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 아일랜드」를 본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 영화를 보면 조금 머리가 아프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추천하고 싶다. 이 영화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데 그건 마치 하나의 예술성처럼 보인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 떠오른다. 누군가를 의심해야 하는 하는데 정작 그 대상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머리만 아픈 스릴러 작품이라고 비꼴 수도 있지만 단연코 얘기할 수 있는 건 이 작품은 그리 만만하게 볼 게 아니라는 거다.
음...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한 차원 높은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더구나 이 영화감독이 마틴 스콜세지라는 것에 더 놀랐다. 「셔터 아일랜드」는 히치콕의 계보를 잇는 작품처럼 보인다. 「사이코」는 모든 스릴러 작품의 시초라고 여겨진다. 인간의 믿음과 불신. 집단의식과 세뇌. 인간의 심리를 한껏 농축해서 영화에 담가 놓은 느낌이다. 그러니까 「셔터 아일랜드」는 한 인간의 내적 활동을 정확하게 포착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존 번연의 소설 『천로역정』처럼 디카프리오는 한 단계씩 밟아나가며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한다. 영화를 보면서 디카프리오가 디카프리오의 뇌를 걸어 다니는 느낌이었다.
인간의 심리에 관해선 학문적인 자료들과 논문들도 많지만 단 하나의 명제만큼은 모두가 인정하지 않을까 싶다. 그 하나의 명제는 ‘인간의 심리는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다’라는 거다. 이 명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우리의 인내심은 모두 한계가 있다. 참고 억누를 수 있는 한계가 분명 있다. 무한하지 않다. 어떤 경계를 그리고 그 선을 넘지 않도록 지어져 있다. 그 한계를 넘는 순간 우리는 모두 미치기 시작하는 거다. 이 영화에서 디카프리오는 결국 미쳐버린다.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문제들도 허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존재한다. 그런데 한계가 없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결국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로만 폴란스키의 「악마의 씨」(1968)는 그런 인간의 심리를 아주 잘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한계를 벗어나면 아무리 비이성적인 것이라도 아주 쉽게 믿어버리는 거다. 「셔터 아일랜드」에서 디카프리오는 결국 굴복한다. 한계를 지나 광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도 이를 잘 보여준다.
“Here’s Johney”
난 아직도 「샤이닝」에서 미쳐버린 잭 니콜슨의 대사가 또렷이 기억난다. 인간의 광기에 관해서 너무나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했던 「지옥의 묵시록」도 다시 보고 싶다. 「셔터 아일랜드」를 보면 머리는 아프지만 마음이 조금 위로가 되는 건 왜 일까? 그건 아마 대리 만족과 같은 것이다. 디카프리오를 보면서 우리는 간접적으로 광기라는 걸 경험한다. 우리는 미치지 않았지만 디카프리오는 미쳤다. 이런 간접성이야말로 영화가 주는 혜택이 아닐까. 그런 구속감에 묻혀 오늘도 내 주위를 천천히 살펴본다. 인간 심리. 그 한계의 유효함. 광기를 피하기 위해 난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