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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 빌뇌브

< Denis Villeneuve ; 평화. 적막. 고유함 >

by 심재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다음으로 좋아하는 영화감독이라면 바로 드니 빌뇌브이다. - 아!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직 데이빗 린치가 있으니. 이 말은 조금 유보하도록 하겠다. - 유튜브에서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진행하는 영화 프로그램을 보다가 이 감독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난 이미 SF 영화 「컨택트」를 본 적이 있었다. 전에도 잠깐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난 드니 빌뇌브 만의 그 고요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습기가 가득 찬 숲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나는 이끼 덤불의 푸석푸석한 생명력을 그의 영화에서 매번 느낀다. 에이미 아담스가 처음 헵타포드(외계생명체)를 마주하는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그 신선함. 그 새로움. 설렘. 차라리 ‘감격’스러웠다고 말하고 싶다. 만약 내가 아기를 갖게 된다면, ‘내’ 아기를 처음 볼 때에 그 벅찬 감정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낯선 존재와 소통을 한다는 건 내 마음의 스펙트럼을 점차 넓히는 일처럼 보인다.


솔직히 얘기하면 드니 빌뇌브의 영화엔 어떤 극적인 사건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관객의 감정을 떨어뜨렸다 다시 흥분시킬 수 있는 역량으로만 따지자면 그의 영화를 높게 평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곧 임종을 맞는 노인의 미세한 심장 박동처럼 영화는 내내 잔잔함과 차분함을 잃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그런 고요함의 끝판 왕이 가장 최근에 개봉한 「블레이드 러너 2049」라고 생각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그만의 방식으로 이 명작의 시퀄을 창조해냈다. 어떤 오락적인 측면만 기대하고 이 영화를 본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드니 빌뇌브의 고요함은 영화가 끝나고 우리 마음에 아주 짙게 남는다. 그리고 그 여운은 식지 않고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계속 보낸다. 현실과 가상세계가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 시대 속에 인간성 또는 휴머니즘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K(라이언 고슬링)의 모습은 잔잔하다 못해 내 영혼까지 어떤 광활하고 푸른 고원으로 이끄는 것 같다.


나는 이런 영화를 좋아한다. 물론 이건 개인의 취향이다. 언제 어디서든 상관없이 볼 때마다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같은 영화. 그런 영화가 좋다.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에서도 어떤 압도적인 액션 씬은 나오지 않는다. 리얼한 장면들을 계속 연출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이상한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누군가가 죽어 가는데 어떻게 평화의 기운이 동시에 깃드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이게 드니 빌뇌브 영화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와 … 얼마 전, 제이크 질렌할이 1인 2역 연기를 하는 「에너미」를 봤다. 압도적이었다. 내가 압도적이라고 느꼈던 건 영화음악이었다. 살결을 파고들어 장기들을 만지는 것 같은 바이올린 소리와 전혀 화음처럼 느껴지지 않는 부조화. 영화 설정과 너무 잘 어울렸다. 어금니가 시려오는 것 같았다. 「컨택트」, 「블레이드 러너」에서 음악감독을 맡았던 요한 요한손이 갑자기 세상을 뜨면서, 혹시 드니 빌뇌브의 음악세계가 차츰 그 힘을 잃어가는 건 아닌지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앞으로도 나는 그의 고유한 사운드를 계속 듣고 싶다. 그리고 믿고 싶다.


곧 티모시 샬라메와 함께 「듄」이 개봉한다고 한다. 벌써 트레일러를 반복해서 보고 있다. 사운드는 건재했다! - 아! 한스 짐머가 이 영화에 참여했다니! - 영화관에서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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