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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일주일(3)

Ⅲ. 형형색색, 문화

by 심재훈

* 이 글은 2020년 2월에 런던을 여행하고 나서 쓴 수필입니다.


솔직히 런던을 일주일간 샅샅이 돌아보았지만 영국의 전반적인 역사와 문화를 파악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영국 문화가 대충 이렇다 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대충’이라는 단어의 어감을 굉장히 소중하게 여긴다. 그건 어떤 문화를 아는 많은 지식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런던 저택의 아기자기한 양식은 내게 귀엽고 아름다운 런던의 고유한 이미지를 마음에 새겨줬다. 나는 아직도 이 이미지를 마음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나는 영국 문화에 대한 저명한 학자나 전문가가 아니다. 여행을 다녀오고 내 마음에 남는 건 그저 그 희끄무리한 이미지이다.

이렇게 우리는 문화를 ‘대충’ 기억한다. 하지만, 그 ‘대충’의 기억은 하나의 문화와 국가에 대한 개인의 입장과 태도를 형성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외부인들과 외국인들은 한국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고 바라보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면 역시 문화만큼 그 국가와 국민의 이미지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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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얼마나 문화와 친숙할까? 단순히 일 년에 한 번씩 인터넷 블로그에 뜨는 미술가의 작품을 보기 위해 미술관을 방문하는 것이 문화생활의 전부인 것일까? 솔직히 나도 나 자신이 얼마나 우리 문화와 친숙하며 잘 알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것이 솔직한 대답이다.

어떤 사람은 한국 문화 외에도 일본이나 중국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시아보다는 유럽, 미국 문화에 더 관심 있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마다 다른 문화보다 특정 문화의 매력에 뿍 빠지거나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것은 개인의 선천적인 기질과 성향에 따라 결정되기도 하지만 후천적인 교육을 통해서 좌우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교육적인 요소들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개인이 특정 문화를 즐거워하고 즐기며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색깔 중에 각자 좋아하는 색깔이 서로 다른 것처럼 특정 문화를 알고 소유할 수 있다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다. 비유를 하자면 어린아이가 장난감 가게에 들러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만질 때 느끼는 쾌감 정도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어려서 독서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다. 삼국지, 초한지, 먼 나라 이웃나라와 같은 역사 만화책들을 주로 읽었다. 사실 그 이후에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를 하느라 독서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대학에 가 가고 나서 많은 친구들과 동기, 선·후배들을 만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부에만 파묻혀 있던 내 고개가 조금씩 들려졌고 그때부터 여러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세상에 공부만 해서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걸 깨달은 거다.

한국의 교육제도는 뛰어난 인재를 기르는 데는 엄청난 효과를 발휘한다. 역설적으로 제도 내의 자율성은 빈약한 게 사실이다. 창의적인 교육보다는 성적 향상 위주의 교육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제도가 계속 지속된다면 앞으로 더 큰 문제를 야기하지 않을까. 문화를 향한 나의 이런 깨달음은 마치 새로운 연인을 알아가는 설렘과 비슷했다. 책은 나의 이런 설렘을 증폭시킨 가장 중요한 연결 고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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