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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일주일(4)

Ⅳ. 안경잡이, 문화

by 심재훈

* 이 글은 2020년 2월에 런던을 여행하고 나서 쓴 수필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 중에 가장 많이 간과하는 부분은 우리가 맞닥뜨리는 특정 사건에 대해 비교적 협소적인 시각으로 판단하고 해석한다는 점이다. 때로는 특정 사건을 잘못 해석하여 판단의 오류를 낳기도 한다. 다시 넓은 세계관을 통해서 그 사건을 비춰보면 우리의 판단과 해석에 오류가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된다. 모든 사건을 오직 넓은 세계관을 통해서만 바라보고 해석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좀 더 넓은 세계관을 통해서 그동안 간과하고 있었던 사건의 다양한 면들을 마주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이렇게 우리는 문화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갖고 있는 세계관을 점점 확장시킨다. 많은 문화를 접하고 체험할수록 사건과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확장되는 것이다. 새로운 문화를 경험함으로써 나 자신도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자부심과 우월감을 느낀다. 그 옛날에 영국의 제국주의가 그렇게 유행했던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자국의 문화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다른 문명의 문화를 알고 지배하는 것만큼 자신을 부요하게 만드는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느 정도 문화에 대한 소유욕을 가지고 있다.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고 싶은 욕구, 이전에 알지 못했던 사물이나 문화재를 보고 싶은 욕구, 유명한 작곡가의 더 많은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욕구 등. 이런 모든 것들이 문화에 대한 욕구라고 말할 수 있다. 과거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았던 시기에는 일반 시민들이 알고 향유할 수 있는 문화의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었다. 독재정부 시기에는 소위 3S(Sex :  성, Sports : 스포츠, Screen : 영화) 우민 정책이 펼쳐지기도 했다. 시대가 지날수록 자유의 가치는 상승하였고 그만큼 우리가 알지 못했던 문화의 영역이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했다. 책과 음악은 문화의 경계가 확장되면서 가장 크게 수혜를 입은 영역이다. 금서가 사라지고 우리는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듣고 싶은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문화를 다르게 표현하자면 읽고, 듣고, 보고, 느끼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매일 새로운 책을 읽고, 새로운 음악을 듣고, 새로운 영화를 보고, 다른 자연환경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문화이다. 소위, 이 읽고, 듣고, 보고, 느낄 수 있는 권리는 엄청난 것이다. 우리는 매일 같은 곳을 걷고, 같은 곳에서 일하고, 같은 곳에 지내기 때문에 이 권리의 중요성을 너무나 쉽게 망각하고 만다. 새로운 도시와 자연환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권리이자 혜택이다. 새로운 문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읽고, 듣고, 보고, 느끼는 것을 포함해서 본다는 것)은 인간의 문화를 향한 소유욕을 충족시키는 행위이다. 우리는 봄으로써 우리 자신을 발전시키고 한 단계 진화된 모습으로 살 수 있게 된다. 로마의 지도자였던 시저(Caesar)는 소아시아의 오리엔트 군을 무찌르고 로마 원로원에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VENI VIDI VICI"


우리가 알지 못했던 땅에 발을 딛는 행위, 보지 못했던 것을 보는 기회. 이런 것들을 단순히 지나치는 순간이라고 간주하지만 사실 우리의 기억과 정서에 엄청난 파급력을 가져온다. 시저는 승리 이후에 새롭게 맞이하는 그 순간과 때를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생각했기에 저런 말을 남길 수 있었던 거다.

본다는 행위는 새롭게 정의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일상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환경을 준비하고 맞이할 채비를 해야 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준비, 새로운 책을 읽을 준비, 다녀보지 못한 거리를 걸을 준비, 보지 못했던 건축물을 볼 준비,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음식을 맛볼 준비, 새로운 옷을 입을 준비를 해야 한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문화를 소유하고 소화할 수 있는 존재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인간형을 보면 인간에게는 모든 문화를 섭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우리 모두가 다 빈치와 같을 수는 없지만 말이다. 인간과 문화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계로 성립될 수 있다. 인간은 문화를 창조하고 다스린다. 다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건 문화가 ‘일과 노동’의 성격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거다. 문화와 친숙하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여유와 쉼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살기 위해서 문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생활을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참된 쉼을 얻을 수 있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슬픈 현실이지만 한국에서 산다는 건 죽도록 고생하며 일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아무도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에겐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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