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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아수라」, 「불한당」

by 심재훈

2010년대에 들어서 가장 생각나는 한국 누아르를 꼽으라면 이 셋을 뽑고 싶다. 하나 더 떠오르긴 했다. 「브이 아이 피」도 괜찮은 누아르라고 생각한다. - 생각보다 이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더라. - 저 세 영화는 탄탄한 배우들과 스토리텔링이 뒷받침이 되었던 것 같다. 그래도 굳이 셋 중에 가장 뛰어난 영화를 꼽으라면 단연 「신세계」이다. 나는 이 영화가 한국 누아르 역사에 중요한 획을 그었다고 생각한다. 약간 「무간도」 느낌이 들면서도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가 떠오르기도 한다. 다케시의 영화 「소나티네」를 보면 엘리베이터 씬이 나오는데 「신세계」에서 정청(황정민)이 반대 조직과 싸우는 장면은 아마 여기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스토리도 나쁘지 않을뿐더러 감독이 캐릭터에 맞는 배우들을 정말 잘 캐스팅한 것 같다. 국내엔 「범죄와의 전쟁」, 「황해」 같은 수작이 있었지만 누아르(Noir) 장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2012)도 대체로 어두운 액션이 자주 나오지만 첩보 스릴러 영화라고 보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 「비열한 거리」(2006) 정도면 어느 정도 같은 장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친구」 이래에 「신세계」만큼 진일보한 누아르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남자라면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영화 「아수라」는 또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끝까지 간다」(2013)처럼 이 영화는 정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플롯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사람은 대가를 치른다. 인과응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이런 극단성과 집념은 한국영화에선 정말 오랜만에 경험하는 것 같다. 피가 나오는 장면이 계속되면 지루해지거나 식상해지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갈 때까지 가보 자라는 전개 방식이 이 영화에선 너무 흥미롭게 느껴진다.

「불한당」은 ‘배신’을 모토로 돌아가는 영화이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배신도 하지만 서로 ‘애정’ 하기도 한다. 이 두 개의 큰 축이 서로 대립하면서 밀어내는 모습을 영화적으로 정말 잘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오랜만에 설경구의 연기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임시완의 연기는 정말 절정에 이른 것 같다. 악을 악으로 갚는 세련된 모습이 멋지다.

이 트리오는 내 개인적인 기준으로 정리해본 거다. 만약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면 앞에서 말한 「브이 아이 피」이다. 여기선 장동건뿐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그의 날카로운 연기와 액션은 독보적이다. 하지만 영화가 갖는 어떤 상징성과 영향력을 고려해보면 저 누아르 트리오보다 약간은 뒤에 있다고 본다. 물론 장동건의 연기는 최고지만 말이다. 최근에 봤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도 꽤 재밌는 영화였지만 역시 손에 꼽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신세계」, 「마녀」의 박훈정 감독에게 많은 영화 팬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넷플릭스에서 본 「낙원의 밤」은 정말 아니올시다 …였다. 이 영화만큼은 정말 실망스러웠다. 부디 새로운 영화로 한국 누아르 계보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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