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참 묘하다.
그 안에 사람의 행동, 선택, 심지어 습관까지 숨어 있다.
스포츠에서도 숫자로 이야기한다.
야구를 보면,
타자가 타석에 들어와 안타를 치든, 삼진을 당하든, 땅볼로 아웃되든
모든 순간이 숫자로 남는다.
그 숫자는 곧 성적이 되고, 몸값이 된다.
2 아웃 상황에서 안타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아웃 확률이 얼마나 높은 지도 숫자가 말해준다.
회사 매출도 다르지 않다.
성수기, 비수기, 매장별 매출, 상품별 등급...
그 모든 게 데이터로 쌓이고,
MD들은 그 데이터를 분석해 다음 시즌 기획의 힌트를 얻는다.
MD도 숫자를 본다.
누군가는 그 숫자를 맹신한다.
누군가는 참고만 한다.
나는 후자였다.
숫자에 약했던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트렌드는 변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 트렌드는 데이터에서 보기 힘든 '감'이었다.
그랬던 내가 숫자에 매달렸던 순간이 있었으니,
새로 옮긴 브랜드에서였다.
매출이 바닥을 치던 시절,
이직 후 두 시즌(6개월)
내가 맡은 카테고리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매장에 가서 매니저님에게도 물어보고
경쟁사들의 제품도 파악해보고 했지만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아
데이터를 하나하나 뜯어보기로 했다.
(그나마) 잘 팔린 제품과 죽 쑨 제품,
두 그룹으로 나눠 원인을 분석했다.
거기에 매니저님과의 대화,
경쟁사 분석 등을 통해 얻은
내용을 종합하여 결론을 얻었다.
문제는 타깃이었다.
우리가 설정한 고객층과 실제로 구매하는 고객층이 달랐다.
그리고 잘 팔린 제품들을 전부 모아놓고 공통점을 찾았다.
‘간편한 착용’
그게 답이었다.
배수진을 치다
간편한 착용에
판매가 좋았던 디자인을 더해 기획안을 만들었다.
디자이너가 없었기 때문에,
직접 발로 뛰며 제품을 만들어야 했다.
업체를 찾아가 원하는 디자인과 착용 방식을 설명하고,
수차례 수정 끝에 샘플을 완성했다.
이 제품은 메인 상품이 되어야 했다.
메인이라면 물량도 많이 실어야 했다.
말 그대로 배수진이었다.
더 내려갈 매출도 없었다.
한 방이 필요했고, 그걸 이 제품으로 잡았다.
주변의 시선은 “무모하다”였지만, 나는 결정을 밀어붙였다.
전 브랜드의 사수 L이 떠나며 남긴 말이 떠올랐다.
“넌 잘 해낼 거야.”
그 말이, 버팀목이 됐다.
출시의 순간
예산을 따냈다.
매장 연출 계획, 촬영 디렉팅, POP 이미지...
신경 쓸게 너무 많았다.
마케팅과 VMD 담당자에게도 내 생각을 명확히 전달했다.
그리고 드디어 출시.
첫 주 판매율 12%.
리오더 이야기가 바로 나왔다.
2주 차, 판매율 40%.
정식 리오더 결정.
매출은 폭등했다.
그래프가 치솟았다.
전에 있던 브랜드에 이어
다시 한번 도약했다.
이 제품의 DNA는 더 많은 상품에 확장되었고
타 브랜드와 차별화되는 포인트가 되었으며
내가 떠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를 분석하고, 명확히 타겟팅하고, 그에 맞는 제품을 만드는 것.
그게 매출을 만든다.
손흥민 선수 아버지의 말이 생각났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그 기본이 ‘운’과 만나야 한다.
운은 기회이고, 기회는 타이밍과 맞아야 한다.
어쩌면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전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