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에게 ‘다름’을 길러주는 원천은?

by 베리피아 다이어리

기획을 해서일까?

무엇을 보든 늘 ‘왜 그럴까,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내가 기획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차별화' 즉, '다름'이 가장 중요하다.


기획자인 나에게,

내가 다녔던 여행은 이런 차별화와 다름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 시절,

운 좋게 해외여행을 몇 번 간 적이 있었다.

(우리 집은 잘 사는 편이 아니었다)


당시 비행기조차 타보지 못 한

친구들이 많았던 시절이라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처음 갔던 여행지는 일본이었다.
너무나 선진국이었던 일본은

말 그대로 신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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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대한민국이 일본과 경제 수준이 비슷하지

그 시절 일본의 가전 브랜드 SONY의 TV는

세계 최고의 가전제품이자 한국에서는 구입하기도 힘들었다.

SONY TV가 집에 있으면 그 집은 엄청 부자였다.

(LG는 그 시절 금성이었다)


거리는 깔끔했고, 사람들은 친절했으며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음식과 간식이 가득했다.

어린 나에게는 일본의 선진 문물들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 후 태국과 필리핀을 여행했다.
동남아의 뜨겁고 습한 날씨, 다른 피부색,
믿기지 않을 만큼 저렴한 물가를 경험했다.
한국돈 10만 원만 있으면 집 안의 가전, 가구를

다 바꿀 수 있다고 할 정도였다.


음식은 짜지만 나름대로 먹을만했다.

지금은 망고는 흔한 과일이지만,

그 당시는 망고라는 과일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때 처음 마셔본 망고주스는 지금도 너무 좋아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엄청 옛날 사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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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는 선진국,

다른 한쪽은 후진국이라 불리던 나라들.
하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 삶의 방식은 모두 달랐고
그 다름을 보는 게 나에겐 흥미로웠다.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그 경험이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야를 넓혀 주었다.

'인터넷'이라는 용어도 없던 그 시절(집에 컴퓨터도 없었다)

나에게는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공부였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어 성인이 된 뒤,
집을 떠나 자유를 얻게 되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여행을 떠났다.


정말 열심히 돈을 모아,
새로운 곳을 경험하고자 하는 솟구치는 마음을

행동으로 실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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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은 대학생을 위한 '내일로'라는

기차표를 사서 전국을 일주했다.

한국도 숨겨진 보석 같은 곳들이 너무나 많았다.


이제는 해외로 가고 싶었다.

나의 선택은 중국이었다.

당시 중국은 짝퉁의 나라라 불리던 곳이었고 후진국이었으며

역사적으로 한국과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지만

공산주의, 사회주의라는 국가 체제로써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무시무시한 북한과

비슷한 나라로 인식이 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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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북한에 대한 인식은 지금처럼 우호적(?)이지 않았다.

6.25 전쟁 때 북한을 도와주었던 중국,

그로 인해 우리는 지금까지도 분단된 국가로 살아가고 있지만

북한과 비슷하면서도 비슷하지 않은 이 중국이라는 나라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런 중국여행은,

나에게 “기획자의 시선”을 열어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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