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륙의 끝없는 매력을 느끼며
나의 시야는 넓어졌고, 마음도 한결 더 유연해졌다.
그런 나에게 다음 여행지는,
조금 더 깊은 호흡을 하고 싶게 만드는 곳이어야 했다.
사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것도,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로망이 있었다.
그저 영화에서만 본,
푸른 바다,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가진
파라다이스만 같은 휴양지였다.
그 첫 번째로 필리핀의 작은 섬 보홀로 향했다.
지금이야 저가항공사와 거기로 향하는 직항도 많아졌지만
당시엔 노선도 적었다.
보홀 또한 직항이 없었고, 당시만 해도 알려지지 않은 낯선 이름이었다.
내가 보홀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버킷리스트에 오래 남겨 두었던 스킨스쿠버를 하기 위함이었다.
마닐라 공항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다시 필리핀 국내선 항공편을 타고 도착한 보홀.
숙소에 짐을 풀고 곧장 향한 알로나 비치에서
나는 말을 잃었다.
눈이 시리도록 하얀 모래,
끝없이 이어지는 푸른 하늘과 바다.
그 풍경은 지금도 내 기억 속 가장 선명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며칠 동안 나는 알로나 비치에 앉아
산미구엘 맥주를 홀짝이며
그저 멍하니 바다를 바라봤다.
한국에서도 바다를 좋아해 자주 찾았지만,
이곳의 바다는 달랐다.
높은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 한국의 해변과는 달리,
자연 그대로의 모습, 목재로 지은 작은 건물들
그 소박함이 오히려 바다를 더 깊게 느끼게 해 주었다.
아직 관광객도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
온전히 바다와 나만 남겨진 듯한 시간이 이어졌다.
드디어 바닷속으로 들어간 날.
스쿠버 장비를 메고 깊은 바닷속으로 몸을 던지자
내 앞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거대한 거북이와 눈앞을 스쳐 지나가던 니모.
물속의 고요와 동시에 느껴지는 대자연의 무서움,
깊은 바다 안에서의 인간은 거북이 보다 느렸다.
만약 상어가 나타난다면 나는 꼼짝없이 당할 것 같다는
웃픈 상상까지 했다.
이런 대자연 속에서 나는 또 한 번 배우게 되었다.
겸손.
자연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리고 그 작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다는 것을.
그 후로 긴 휴가가 있을 때마다
나는 동남아시아의 바다와 휴양지를 찾아 떠났다.
대부분의 나라가 바다를 끼고 있고,
뜨거운 날씨 덕분에 수많은 휴양지가 있었다.
나는 언젠가 그 모든 유명한 해변들을 다 둘러보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품기도 했다.(아직도 그 계획은 진행 중이다)
기획자로서 남은 것
중국 대륙의 광활한 여정,
동남아시아의 깊은 바다와 휴양지에서의 시간.
그 경험들은 훗날 내가 브랜드를 만들 때
흔들리지 않는 근본이 되었다.
세상을 넓게 보고,
다름을 인정하고,
겸손히 배우며,
가장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는 태도.
결국 기획자는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여행을 통해 그 기본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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