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피드백은 놀랄 만큼 한결같았다.
예뻐요. 그런데... 너무 작아요.
수영인들은 보부상에 가까운 사람들이 많았다.
샴푸, 린스, 폼클렌징만 해도 부피가 크고,
수영복·수모·수경·타월까지 합치면 가방이 금세 포화 상태가 된다.
우리 파우치 가방은 구조와 용도는 설득력이 있었지만, 크기에서 부정 피드백이 있었다.
제품 자체를 키우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바꿨다.
'가방을 바꾸지 않고, 공간을 늘릴 방법은 없을까?'
그날부터 노트와 브라우저가 가득 찼다.
수영 커뮤니티, 블로그 후기, ‘What’s in my swim bag’ 같은 게시물들을 한참을 훑었다.
어떤 사람은 큰 통째로 샴푸를 들고 다녔고, 어떤 사람은 미니 공병을 썼다.
사용 동선, 샤워실 환경, 라커 규격, 젖은 물건과 마른 물건을 분리하는 방식.
하나하나 캡처해 노션에 모으고, 공통 패턴을 밑줄 그어가며 정리했다.
그리고 한 줄의 답이 떠올랐다.
“부피를 줄여서, 가방 밖으로 빼자.”
해법은 샤워용품들을 소분할 수 있도록 하고 그것들을 밖으로 꺼내자.
그걸 할 수 있는 건 걸 수 있는 실리콘 공병세트였다.
대용량을 소분해 쓰는 여행용 공병.
많은 분들이 이미 쓰고 있었지만, 대부분 가방 안에 들어가 있었다.
발상을 90도 틀었다.
밖으로 ‘걸 수 있다’ 면 그만큼 내부 공간이 살아난다.
문제는 디테일이었다.
외부에 걸 공병은 흘러선 안 된다.
그러려면 공병 입구 구멍의 구조가 확실히 잠기고 쏟아지지 않아야 했고
공병 상단에 고리를 걸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어야 했다.
또 한 개만 들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므로 세트로 판매를 해야 하는데
내용물 구분이 쉬운 컬러 구분과, 라벨 스티커를 함께 있어야 했다.
세트로 판매하는 만큼 보관용 비닐 팩까지 갖춰야 ‘외출-샤워-보관’의 동선이 매끄럽다.
수십 종을 비교했다. 사이즈, 재질, 마감, 캡 구조 등,
30ml는 귀엽지만 용량이 부족했고,
90ml는 넉넉하지만 무겁고 거대해 보였다.
수영장 동선을 다시 떠올리며 계산했다.
샴푸·린스·바디워시의 1회 사용량, 일상적 주 2~3회 루틴.
결론은 60ml.
용량과 무게, 심미성과 실용성의 균형점.
그리고 한글 라벨 스티커까지 제공된다.
공병세트는 어느 정도 각이 잡혔다.
다음은 이 공병세트를 걸 수 있는 고리였다.
고리는 두 개의 고리, 두 개의 역할이 필요했다.
바깥에 걸어야 했는데 공병 업체에서 고리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시 검색 시작하기 시작했다.
필요한 건 두 가지였다.
메인 링
: 실리콘 공병 3개를 한 번에 걸 수 있을 만큼 넉넉하고, 원터치로 열고 닫히는 오픈 구조.
S자 고리
: 파우치 가방, 라커, 샤워실 손잡이 어디든 걸리는 범용성.
사이즈 표기를 엑셀에 넣어가며 내 가방 실측과 대조했다.
실리콘 목의 지름, 링의 내경, S자 고리의 굵기와 하중.
미세한 수치 차이로 ‘헐거움–빡빡함–스크래치’의 결과가 달라졌다.
몇 번의 허탕 끝에, 마침내 딱 맞는 조합을 찾았다.
도착한 샘플을 들고 사무실에서 미니 ‘샤워실 시뮬레이션’을 했다.
물 채움 → 뒤집기 → 흔들기 → 방치 → 재확인.
누수 없음을 확인한 뒤, 파우치 외부에 걸어 실사용 동선을 테스트했다.
라커 걸기, 샤워실 걸기, 이동 중 흔들림, 젖은 타월 수납 시 간섭.
동선이 자연스럽고, 손이 쉽게 가야 습관이 된다.
확신이 들자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상세페이지엔 ‘예뻐 보이는 컷’보다 ‘실제로 쓰이는 장면’을 담았다.
업로드 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파우치 가방만 사던 흐름에서, 공병 3종 세트 동시 구매가 급증했다.
작아서 망설였는데, 공병을 밖에 거니 재밌기도 하고
공간도 커져서 좋아요.
샤워실에 바로 걸 수 있어 편해요.
리뷰의 문장들이 제품 기획 노트의 체크리스트와 정확히 겹쳐졌다.
그 순간의 성취감은, 숫자로만 설명하기 어려웠다.
‘고객의 불편 → 관찰 → 가설 → 검증 → 전달’
그 선이 또렷하게 하나로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역시 고객 피드백은 중요하다.
그분들이 실사용 자니까 말이다.
집중해서 리뷰를 읽다 보니, 또 다른 반복이 보였다.
“3개 말고 4개였으면.”
헤어/바디 3종에 클렌저나 트리트먼트까지 쓰는 사람이 많았다.
다시 소싱처와 협의해 4종 세트와 그에 맞는 비닐 팩을 확보했고,
소비자가격은 꼭 필요한 만큼만 올렸다. +1,000원.
이후 피드백 창은 ‘사용법’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가방을 자신의 방식으로 꾸미고,
공병 색을 취향대로 조합하고,
걸 위치를 바꿔 자기만의 동선을 만들었다.
제품은 어느새 사람들의 손에서 비로소 완성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꾸미기’에서, 나는 또 하나의 힌트를 보았다.
다음 개선의 실마리는 거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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