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MD추천', ‘MD 픽'이라고 적힌
마크나 표시를 본 적이 있을 거다.
나도 이 업계에서 일하기 전까진 MD가 무슨 뜻인지
알지도 못했다. 그냥 추천한다고 하니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만 했었다.
마치 식당 메뉴판에 'BEST' 혹은 '추천'이라고 적힌 문구랄까?
내가 10년 넘게 해 왔던 일,
‘MD’의 정식 명칭은 Merchandiser.
직역하면 '상품 기획자', 현실에선 ‘뭐든 다 한다’는 뜻으로도 통한다.
정말 그렇다.
기획부터 생산, 판매까지.
그 한가운데서 흐름을 설계하고 조율하는 일,
그게 바로 MD가 하는 일이다.
쉽게 말하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패션 업계에서 일하기 전엔
디자이너가 모든 일을 하는 줄 알았다.
“디자이너가 옷 만들고,
공장에서 찍어내면 되는 거 아냐?”
그런데 막상 그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전에도, 그 사이에도,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았다.(진짜 너무 많다.)
그리고 그 대부분을 MD가 중심이 되어 풀어간다.
가장 먼저 하는 건 예산과 목표 매출을 짜는 일이다.
회사가 목표 연도에 얼마를 벌어야 하는
내가 어떤 상품을 기획해서 얼마만큼 팔 수 있을지
거기서 어떤 마진(이익)을 남길 수 있을지
이걸 엑셀 시트에 담는 것부터 시작된다.
한 시즌이 숫자 속에서 조용히 시작되는 순간이다.
스타일은 몇 개?
어떤 컬러, 어떤 사이즈?
수량은 어느 정도로 나눌까?
많은 분들이 매장에서 옷을 고를 때
디자인만 보게 되지만,
그 옷이 그 자리에 있게 한 건
그보다 더 앞단의 수많은 결정들이다.
잘 팔리는 색과 사이즈엔 수량을 더 실어야 하고,
유행이지만 모험적인 색은 소량으로 간다.
이건 감보다는 데이터,
하지만 감이 없으면 데이터도 방향을 잃는다.
왜냐하면 올해 잘 팔린 제품이
내년에도 잘 팔린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트렌드와 유행은 늘 변한다.
특히 한국은.... 유행이 너무 무섭다.
그 유행에 편승하면 매출이 폭주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엔...
동남아 같은 곳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가는 네 계절이 뚜렷하다.
그래서 패션은 계절 장사다.
봄/여름 시즌에는 반팔, 얇은 셔츠, 시원한 소재
가을/겨울 시즌에는 니트, 코트, 다운, 기능성
중요한 건 출시 타이밍이다.
“여름이 왔을 때 반팔을 팔기 시작하면 늦다.”
시장은 항상 ‘조금 앞서서’ 움직여야 한다.
즉, 출시 일자를 더워지기 전,
추워지기 전으로 맞춰야 된다.
심하게 유니클로는 한창 더운 여름에 경량 다운이 나온다.
(대단하다...)
어떤 옷을 메인으로 할지,
이번 시즌은 어떤 톤으로 갈지,
마케팅에 어떤 메시지를 넣을지도
MD와 디자이너가 함께 논의하며 결정한다.
물론, 서로의 의견이 다를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럴 땐 ‘고객이 무엇을 좋아할까’를 기준으로
조율하고, 설득하고, 양보하고...
결국 하나의 방향으로 모아간다.
디자이너랑 사이가 안 좋으면... 전쟁이다.
제품의 대부분은 기획자가 의도한 대로,
디자이너가 한 디자인 그대로 결과물로 나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 사이사이에도 정말 많은 소통을 통해 하나의 제품이 탄생한다.
혹은 탄생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햇반'의 탄생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처음 햇반을 개발하자고 했을 때 다들 미쳤다고 했단다.
맨날 밥 지어먹는 한국인들이 라면 같은 간편식처럼 밥을 만들어 팔면
누가 사겠냐고.
그걸 기획한 사람도 대단하지만 그걸 세상에 빛을 보게 하기 위해선
정말 많은 선에서 고민하고 결정했을 텐데 결국은 세상에 나왔고
'햇반'이라는 단어는 이제 간편식 밥의 고유명사가 되어버렸다.
샘플을 검토한 뒤 이 제품을 진행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진행하기로 결정한 제품들은 얼마나 만들어 낼 것인가를 결정한다.
잘 팔릴 것 같은 건 물량을 넉넉히
반응을 봐야 할 제품은 소량만 실험적으로
여기서 중요한 건
이게 ‘감’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경험, 수치, 트렌드 흐름, 매장 상황까지
모두 함께 고려해야 한다.
한 시즌 혹은 한 해의 흐름을 설계하는 사람.
디자이너가 옷의 스타일을 만든다면,
MD는 그 옷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얼마만큼 팔릴지를 설계한다.
감각도 필요하고, 숫자도 읽어야 하고,
MD는 모든 부서와 협력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정말 중요하다.
내가 이 일을 10년 넘게 해 왔다는 건,
그만큼 ‘제품이 탄생해서 고객에게 가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경험해 봤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나만의 브랜드에서
내가 생각하는 ‘좋은 상품’을 만들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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