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 수영 Oct 13. 2024

우리가 싸우지 않는 방법

나보다는 상대방을 먼저

  남편과 만난 지 10년쯤 됐다 하면 주변사람들에게 항상 빠지지 않고 듣는 질문이 있다. "너희는 안 싸워?" 싸운다는 건 뭘까? 만약 서로 감정을 쏟아부으면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걸 싸움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싸운 적은 없는 것 같다. 혹여나 다투거나 언쟁이 생기더라도 감정이 격해지기 전에 해결되는 편이라 그런 것 같다.


 우리는 다툼이 생겨서 기분이 상했다면 솔직한 마음을 털어놔서 화해하는 편이다. 나는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게 섭섭한 적이 많았는데 내가 말을 안 하면 모르는 게 당연한데도 알아서 알아채주길 바라는 마음에 자주 삐졌던 것 같다. 내가 기분이 상해 입이 삐죽 튀어나오거나 뚱해져서 말을 안 하면 남편은 금방 눈치채고 날 구슬리기 시작한다. 왜 그러냐며 알려달라고 말해주는 남편의 모습에 속상했던 이유를 하나하나 말하면서 대화로 털어내다 보면 속상했던 마음이 자연스럽게 풀리고는 한다.

 속상한 이유를 얼른 말해 위로받고 공감받고 싶었던 나와 달리 남편은 시간이 필요한 편이다. 평소랑 조금 다른 무표정한 표정을 발견하면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었구나!'라는 느낌이 올 때가 있다. 그럴 땐 남편에게 얼른 달려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는데 남편은 잠시만 시간을 달라고 말하곤 한다. 마음이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남편을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나에게 다시 다가와서 어떤 일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는지 말해주며 마음을 풀곤 한다.

 만난 지 처음부터 이런 화해방법을 찾은 거는 아니었다. 남편은 처음엔 내가 툴툴거리거나 삐져도 잘 눈치채지 못했고, 나 역시도 남편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에 대체 얼마나 기다리라는 건지 알 수 없어 계속 왜 그러냐고 재촉을 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투고 화해하며 서로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마음이 있는지 점차 이해하게 되었다.


 강요하지 않는 것도 방법 중에 하나인 것 같다. 우리는 대학교에서 만나서 인연을 이어왔지만 그래도 보내온 시간이 다르기에 똑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었다.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행동이 남편에게는 그렇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다. 난 좋다고 생각해서 말하는 건 데 따라주지 않는 남편이 야속하고 짜증 날 때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편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아서 기분이 안 좋은 거구나.' 내가 남편이 되어 행동할 수도 없는 건데 내 입장만 계속 강요한다고 좋아질 게 하나도 없었다. 결국 내가 말해서 수용해 주면 고마운 거고, 수용해주지 않더라도 내 생각을 전달한 채 남편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다툴 일도 많이 없었고 남편도 가능한 것들은 해주도록 노력해 줬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가 잘할 수 있는 걸 하기로 했다. 집안일도 그러했는데 나는 빨래 개기, 청소기 돌리기, 설거지하기를 어렵지 않게 느끼고, 가끔은 깨끗해지는 집에 이런 일들이 재미있기도 하다. 반면에 남편은 이런 것보다는 필요한 물건을 나가서 사다 주거나, 쓰레기 버리기, 바닥 닦기 등이 더 좋다고 맡아서 해주는 편이다. 서로 안 좋아하는 일을 잘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신기해하며 대단하다고 잘한다며 칭찬해주다 보니 억지로 한다기보다는 나서서 하게 된다. 혹시 상대방이 바쁘거나 일이 생겨서 못하더라도 당신이 힘드니까 '내가 해줄게!'라는 마음으로 행동하다 보니 싸울 일 보단 웃을 일이 더 많아졌다.


 하지만 싸우지 않았던 가장 중요한 방법은 나쁜 말, 나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화나도 서로에게 욕설은 하거나 상대방을 비하하지 않았고, 다툴 때는 큰소리보다는 조곤조곤 말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상대방을 깎아내리지도 않았고 둘만 있을 때도 무시하는 태도를 하지 않았다. 화나거나 속상한 일을 풀고 싶은 거지 상대방을 밟아서 승리하고 싶은 건 아니기에 말을 뱉을 때도 한번 더 생각하고 말했고 남편도 그렇게 행동해 줬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서로에게 고맙다고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고 몇 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는 말이다. 사소한 일을 해줘도 고맙다고 말해주고 아무 일 없어도 사랑한다고 말해주는데 싸울 일은 잘 생기지 않는 것 같다. 지금처럼 서로를 생각하고 배려해 주며 미움보다는 사랑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이전 08화 내가 있으니 언제나 도망쳐도 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