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우리가 밥을 차려먹어야 한다
막 연애를 시작했을 즈음 나에겐 로망이 하나 있었다. 바로 도시락 싸기! 대학교 인근에 큰 공원이 있었는데 벚꽃이 만발한 봄에 직접 만든 도시락을 들고 나들이를 가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도시락을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니 요리는 이제 로망이 담긴 이벤트가 아닌 일상이 되어버렸다. 배달음식으로 매 끼니를 해결할 수도 없는 데다가 남편의 회사에 도시락 열풍이 불어 갑자기 실전 요리에 뛰어들게 되었다.
우선 요리의 세계에 내가 먼저 발을 들였다. 어릴 때부터 엄마 옆에서 요리하는 걸 종종 거들었던지라 나름 요리를 할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부터 다 혼자 해보려니 칼 잡는 방법부터 틀렸더라. 결국 유튜브와 블로그를 선생님 삼아 하나하나 음식을 만들어보기 시작해 보면서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편의 계란말이 지옥이 시작되었다.
처음 도시락을 만드려 하니 고민이 생겼다. '도시락은 뭘 싸줘야 하지?' 나에게 필요한 건 예쁜 피크닉 도시락이 아닌 매일매일 해치워야 하는 실속만점 도시락이었다. 고기반찬은 일단 사 와서 조리만 하면 되는데 되는데 곁들임 반찬으로 생각나는 것도 없고 사 오자니 입맛에 안 맞고.. 생각나는 게 내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반찬이었던 계란말이었다. 게다가 나도 회사를 다니는지라 매일매일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긴 좀 벅찬지라 할 게 없으면 주야장천 계란말이를 만들어 도시락에 담아줬었다.
계란이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새로운 반찬들을 정복해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간단해 보이는 시금치, 콩나물 등을 무치기 시작하면서 고기도 재워보고 볶음도 해보고 점점 요리의 폭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중간에 실패도 꽤 했지만 대부분 레시피에 나와있는 대로 따라 하니 그럴듯한 요리들이 만들어졌고 이제는 레시피 없이도 만들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요리를 배워가면서 남편의 도시락도 점점 질이 올라갔다! 가끔은 같이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이 부러워했다고 뿌듯해하기도 했는데, 그건 남편이 계란지옥을 버텨준 덕에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점점 맛있어지는 도시락과 집밥에 남편도 요리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요리를 하고 있으면 옆에서 구경을 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보였는지 재료 손질이나 음식 볶기 등을 해주더니 자신감이 붙었는지 본인이 먹고 싶은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뭐든지 잘 먹는 남편과 달리 나는 편식이 꽤 있는 편이라 내가 안 만들어주는 음식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먹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본인이 만든 음식들을 내 몫까지 만들어주고는 반응이 어떤지 눈을 반짝이는 모습들을 보는 쏠쏠한 재미들도 생겨났다. 맛있다고 하면 엄청나게 뿌듯해하며 또 만들어주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데 그 모습을 보는 게 참 귀엽다. 나 역시도 내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은 남편이 눈을 빛내며 맛있다고 대단하다고 추켜세워주는 게 재밌어서 반응을 보고 싶어 음식을 열심히 만들어주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만들어주는 건 항상 맛있다며 먹어주는 남편이지만, 맛없는 걸 맛있다고 해주진 않더라.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이 있는데 바로 '고사리무침'이다. 엄마가 건고사리를 줬었는데 연이은 요리성공에 자만에 차 포장지 뒤에 있는 레시피만 보고 요리를 해버렸다. 건고사리인지라 오래 불려야 하고 부족하면 오래 삶기라도 했었어야 했는데 그걸 모르고 포장에 적힌 대로 짧은 시간 불려서 데쳐 요리했다가 딱딱한 고사리 무침을 만들어버렸다. 나중에 엄마가 또 고사리를 줘서 제대로 만들었는데, 남편이 그때 기억이 강렬했는지 수상해서 안 먹어보고 싶다는 걸 한 번만 더 믿어보라며 맛 보여줬던 게 기억에 남는다. 다행히 다시 만든 건 맛있었는지 맛있다며 금방 해치웠고 이제는 우리 집에 자주 등장하는 반찬이 되었다.
처음 요리를 시작했을 때는 남편이랑 같이 울면서 대파를 썰었는데 이제 능숙하게 요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다. 이제 계란말이만 만들던 과거와 작별하고 꼬막비빔밥, 초밥, 타코, 파스타, 케이크 등 먹고 싶으면 뭐든지 만들어주는 우리 집 한정 주방장이 되었는데 아직 어설픈 우리 집 부주방장과 함께 계속 맛있는 집밥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