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 한 그릇의 위로

소소한 일상

by 아이린

힘든 오늘의 일상을 보내고 들어오는 길, 자장면이 갑자기 먹고 싶었다.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속이 불편해 삼가기도 했지만 9000원이라는 돈을 밥 먹는데 써버리는 게 좀 그래서 먹고 싶은 때는 짜장라면으로 대체한 게 좀 됐다. 1인분 사 먹을 돈이면 오이사고 짜장라면 1팩 사서 부모님도 드실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며칠간의 스트레스가 목까지 차올라서 뵈는 게 없었다. 스트레스가 생기니 실수 가늘어 가지고 다니던 조그만 물병이 배낭에서 떨어지는 것도 몰랐다. 그것만이 아니라 거기 같이 있던 카드지갑도 없어졌다. 누가 소매치기를 한 걸까? 거기 현금카드랑 쿠폰 영수증류 밖에 없는데...


돌아오는 길에 차를 갈아타다 알게 되어 중간에 주저앉아 카드 분실신고를 했다. 카드 재발급받는데 시간이 걸린단다. 20일이 생활비 들어오는 날인데... 기운이 다 빠진다. 나에 대해 지긋지긋하다는 혐오감이 올라오고 아무튼 딱 울고 싶은데 누가 뺨 때리는 기분이었다. 하두 건망증과 물건 분실이 잦아 (아버지 때문에 내 이런 상태가 더 근심이 된다) 중요한 물건을 여기저기 분산해 둔다. 카드라곤 현금 카드 하나 가지고 다니는 수첩에 만 원짜리 한 장. 그리고 동전지갑. 신분증 잃어버리면 골치 아파지니까 모바일 신분증도 만들어뒀다. 그런데 오늘 이게 뭔지 정신을 어디다 팔아먹고 물건 사라지는 것도 몰랐냐고ㅠㅠ 동전지갑에서 꺼낸 동전으로 지하철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마음을 조금 달랬다.

지하철이 오려면 시간이 좀 있어 다행이었다.


돌아오는 길, 골목 입구의 중국집에 들어갔다. 수첩에서 꺼낸 만원을 손에 들고 들어갔다. 그냥 저질렀다. 보통의 나라면 안 할 일이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나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자장면 한 그릇이 그 역할을 해줄 것 같았다. 어린 시절 자장면을 먹는 날은 좋은 날이었다. 탕수육까지 먹게 되면 동생과 나는 무척 행복해 어쩔 줄 몰랐다. 입가에 자장이 묻어도 상관없었다. 골고루 비벼서 먹고 바닥에 남는 것도 긁어먹었다. 오늘 생활에 찌들고 나이도 한참 먹은 나는 자장면 한 그릇을 다 긁어먹으며 눌어붙어 있던 우울함도 삼켜 버렸다.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에 힘들어하지 않겠다 해놓고 내가 어쩔수 없는 문제에 분노하고 우울해하고 그러다 사고치고.... 자장면 한 그릇으로 나를 달래고 돌아오며 많이 반성했다. 아직 나는 멀었다 싶다. 마음을 다스리는 노력을 더 하자. 자장면 한 그릇에도 행복했던 기분을 다시 찾자.


아.. 돈은 썼지만 우리 동네 자장면은 맛있다. 내 기분을 다시 끌어올려주는 게 얼마나 대단한가

정말 자장면 한 그릇이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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