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라고 생각하면
아버지의 변화는 글쎄 치매 환자들에게 보이는 성향과는 좀 다르다. 그냥도 편한 성격이 아닌 분이었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불벼락을 내리고 진짜 혼나겠다 싶었던 일은 그냥 넘어갔던 과거에서 정도가 한 두 배 업그레이드 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정신이 온전할 땐 어느 정도 본인이 진정하시다가 그게 사라진 상황이 되니 직접 그 포화를 맞는 나는 미칠 지경이다. 동종 혐오라고 아버지와 나는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를 보며 쌀쌀맞은 지 어미와 인정머리 없는 아비가 결합한 악종이라고 쏟아부었을 만큼 나 역시 좋은 성격 아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싫어하셨었다. 지금도 그다지 호의는 못 받고 있지만 당신을 그리고 어머니를 옆에서 직접 도울 것은 나라는 인식만은 가지셨는지 일정선은 넘지 않으셨다.
며칠 전 아버지는 그 선을 넘었다. 치아가 신통치 않은 두 노인네 마찬가지로 치아가 신통치 않은 나 나는 밥 량을 줄여 대충 씹고 삼키지만 두 분은 정량의 식사에 꼭꼭 씹어 드신다. 내 식습관이 좋지 않은 건 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먹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식사를 하는 중이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아무리 닦고 돌봐도 부서져 내리는 치아를 최대한 혹사 안 시키려는 골육책인데 어른들은 예전에 내가 한 말을 다 잊으셨는지 당신들과 보조를 맞춰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역정 내신다. 그 어른은 아버지다. 내가 밥상을 일찍 벗어나는 게 불쾌하셨나 보다. 당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는지... 참고로 아버지는 나를 존중해 준 적 한 번도 없다. 뭐 내 또래의 대한민국 대다수 아버지들이 그랬을 거라 싶어 별로 신경 쓰거나 분노한 일은 없다.
밥은 다 먹었는데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다 보니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내 또래 여성들이라면 요의를 참지 못하는 이가 좀 될 거다. 나는 여기저기 고장이 많이 난 사람이라 내 나이에 나타날 수 있는 모든 나쁜 증상을 다 겪는다. 일어나서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온 게 문제였다. 낡고 조그만 빌라에 화장실이 몇 개겠는가 화장실에 가서 용무를 마치고 손을 씻고 나오는데 밥 먹는데 더럽게 화장실에 들어가 밥맛 떨어지게 한단다.
그냥 아무 말 앉고 도로 앉았더니 또 당신을 무시한다 생각했는지 벼락처럼 쏟아부었다.
결국 내가 터졌다." 나도 아버지처럼 그냥 앉은자리에서 쌀까요? " 어머니가 나를 야단치셨지만 나도 뵈는 것이 없어서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어디 피할 데도 없어서 나는 입을 다물고 아버지를 보지 않기를 선택했다. 헤드폰을 끼고 천천히 고개 숙이고 밥 먹고 그냥 앉아 헤드폰 속 음악을 듣고 두 분이 식사를 마치면 상을 치우고 방으로 들어간다. 문제는 내 몸이 아프다는 거다. 예전 시댁식구들에게 분노를 느낀 어머니가 몸이 아파서 고생한 일이 있으셨단다. 어머니는 나를 힘들고 화나게 한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왜 내가 아프냐 기도하니 그것까지 참으라고 하셨단다. 나에게 하나님이 이것도 참으라 하시는 것 같다. 피할 데 없고 왠지 억울하고 초라해지는 이 기분 존중은 기대도 안 하지만 그래도 약간의 배려를 원했다. 어쩔 수 없는 내 힘으로 해결이 안 되는 문제가 나를 얽어매 요 며칠 조금 힘들었다.
예전에 시댁식구를 가족보다 남이라고 생각하면 편해진다고 누군가 쓴 글을 읽은 적 있다. 잘해주면 고맙지만 아니어도 남이니 나는 지킬 도리만 지키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남이다. 잘해주면 고맙지만 아니어도 인간으로 내가 할 도리만 최소한 하면 된다로 말이다.그러지 않으면 치매환자 가족으로 살기가 힘들 것 같다. 가족이라는 시각 벗어버리고 남이라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무너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