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살아 내야지
서울의 집을 떠날 무렵 집안 상황은 엉망이었다. 사랑하는 동생 덕에 50년 정도 살던 집을 잃었다. 나는 그래도 가족이 모여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내 전재산을 털고 약간의 대출을 받아 지금 사는 동네에 집을 마련했었다. 우리 가족 모두의 신용 상태가 엉망이어서 사촌의 이름으로 집을 사며 대출을 받았었다. 대출금을 거의 다 갚을무렵 사촌이 파산을 했다.
나는 사촌 이름으로 집을 구할 무렵 안전장치를 해둘 방법을 알아봤지만 우리 가족 중 어느 누구도 그걸 할 수 없었다. 근저당권을 왜 설치 안 했냐고 누군가 그러는데 우리 명의 대출도 불가한데 누구 이름으로 그 집에 근 저당권을 설치하겠나... 그렇게 우리는 두 번째 집을 잃었다. 우리는 다시 갈 곳을 모색했다.
이럭저럭 작은 전세로 빌라를 구했지만 내가 머물 곳이 없었다.
집을 얻는 일은 동생이 했다. 지은 죄가 있으니 지가 나섰다. 나는 일하던 서울에서 작은 월세방을 얻어 살았었다. 일자리 잃기까지 몇 년은 그렇게 살았다. 일자리를 잃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마침 조카가 군대를 갔고 방이 비어 그리로 들어왔다. 어린 여조카랑 한방 쓰는 생활을 하러 들어와 일 년여를 살았다. 그런데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이 낡은 월세살이 빌라가 경매에 올라갔고 유찰에 유찰을 거듭하더니 채권자가 그냥 헐고 건물을 짓겠다고 나가란다.
지금은 몇 년 전보다 형편이 더 나쁘다...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중인데 돈도 사실 없고 막막하다 경매로 두 번 집 잃고 그중 한 번은 우리 가족 탓이라도 나머지는 우리 가족의 잘못 아닌 지독히 나쁜 운 탓이고 세 번째는 이것도 그렇지 뭐. 경매로 두 번 집 잃고 세 번째도 그 비슷한 지경이 되고
몇 달째 돈을 구하려 애쓰고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중인데 모르겠다. 나이 들고 병든 부모님과 엉망인 나 조카 그리고 동생내외에게 허락된 공간이 어딘가는 있겠지. 살아야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