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외사촌 여동생은 시아버지가 10년 치매를 앓다 돌아가신 지 6개월 만에 시어머니가 치매라는 진단을 받았다. 시아버지의 투병 기간에 시어머니도 증상이 있었을 것이라고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단다. 시아버지에게 온 가족이 신경 쓰느라 시어머니의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을 거라고 그러시더라나.
외사촌 여동생의 시어머니는 시아버지와 다르게 진단을 받을 땐 중등도 정도 단계였다. 기가 막혀 어쩔 줄 모르는 그 애를 의사 선생님이 위로해 주시더란다. 며칠 전 스트레스가 목까지 차오르던 어느 날 전화를 하니 , 두 어머니가 자기를 잡는다나... 우리 외숙모 즉 그 아이의 엄마는 삶에 대한 집착이 아주 크신 분이다. 특이한 암 진단받은 후 지금까지 투병 중이신데 계속 전이되고 있다. 병원에서 권하는 새로운 약과 치료를 계속 시도 중이란다. 문제는 그 치료가 돈이 들기에 동생이 금고 노릇을 해야하는는 거다. 남편이 벌어주는 돈으로 친정에 가져다줄 수 없어 이아이는 오후 출근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듣고 올케가 욕심을 좀 버리고 딸을 편하게 해주지 않는다고 그러신다. 그것만이 아니라 반찬을 해 나르며 친정아버지도 돌봐야 한다. 시어머니 병원 모시고 다니고 사이사이 친정어머니 챙기고 친정도 가봐야 하고 출근도 해야 하고 동생의 이동 경로를 보니 서울을 반바퀴정도 돌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남편의 암수술도 했고 본인의 종양 제거 수술도 받았단다.
나보다 더 힘들게 사는 그 애에게 힘들다 소리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최소한 우리 아버지는 욕을 하거나 뭘 집어던지는 건 아니지 않나. 아버지는 요즘 들어 화를 내는 빈도가 늘었지만 어머니가 완충재 노릇을 해주셔서 그래도 좀 순화된 (?) 상태다. 아무튼 견디기 나아졌다. 내 동생 놈은 자기는 아버지 감당 못하니 누나가 끝까지 돌봐달란다. 그러면서 얼마나 더 사실까 하고 묻는다. 내가 버럭 하니 감당하기 힘든 단계 가면 요양병원 보내잔다. 기가 막혔다. 자기는 자식 아닌가 싶었다. 외사촌 여동생의 시아버지는 만 9년 투병을 하다 가셨다. 그 시아버지는 우리 아버지보다 연세가 아래셨다. 우리 아버지도 그 정도 사실까? 어머니와 동갑인데 어머니가 먼저 가시면 어쩌지? 지금은 어머니가 아버지를 전담케어 하시고 나는 한번 걸러진 형태로 아버지를 만나지만 만약 어머니가 먼저 가시면 내가 어머니만큼 아버지를 돌볼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 없다. 나 역시 그리 건강하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내 삶의 하반기를 아버지를 돌보는 일로 다 쓰고 싶지 않다.
그러나 치매 환자의 가족에게는 선택의 범위가 별로 없다. 요양 병원이 있다지만 비용도 사실 만만치 않다. 아버지는 아직은 데이케어 센터 같은 데 가실 정도는 아니고 어머니가 함께 계셔서 일상 전반을 살펴주신다. 그러나 어머니의 건강이 아버지보다 계속 나은 상태일 거라는 보장은 없다. 한동안은 이런 문제로 걱정도 되고 우울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치매가 어떤 상태로 진전될지는 모르겠다. 현재는 꾸준히 약 먹고 운동하고 뭐 그러지만 점점 변해가는 아버지의 외모나 성격을 보면 끝이 그리 오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외사촌 여동생은 시어머니에게 드잡이를 당한 후 너무 힘들어 남편에게 이혼하자 했단다. 애들도 다 키워줬으니 할 일 다 한 거 아니냐고 했다나. 내 엄마 때문에도 힘든데 당신 엄마까지 감당하기 너무 힘들다 했단다. 제부는 암말도 못하더라나... 나는 내 아버진데 남의 엄마도 감당하며 사는 애도 있는데 , 힘들다 힘들다 자꾸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얼까? 그냥 하루하루 숙제를 한다는 마음으로 할 일을 챙기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 그게 나의 일 아닐까? 생각보다 마지막이 빠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인생이라는 게 모르지 않나 그냥 오늘이 나와 아버지에게 그리고 어머니에게 주어지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할 일을 챙기며 열심히 그러나 담담히 살아가는 거다. 힘들면 주저앉아도 된다. 그러나 최소한 내가 부모 보다 먼저 가는 불효는 저지르지 말자. 내 건강을 챙기자. 그래서 자녀 된 도리를 할 수 있는 한 다하자. 기운 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