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위로
용서하지 않을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상담교육받을 때 들은 일이 있다. 용서하지 않을 권리라.... 사과를 하면 용서를 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정서가 존재하는 요즈음에 자극을 주는 명제였다. 내가 기독교인이라서인지 용서는 사실상 반강제로라도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용서도 사과를 받을 대상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 가능한 것 아닌지. 사실 사과 했다고 용서해야 할 의무는 없는데 왜 그렇게 용서를 하라고들 할까? 정말 오래전에 리더스다이제스트에서 읽은 이야기가 있었다.. 글쓴이의 이름도 상황도 다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그 글의 아우트 라인만은 남아있다. 어린 시절 친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아버 지를 용서한다고 아버지 앞에서 선언하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용서가 가해자를 사랑하고 내 삶에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했다. 과거의 그 상처가 자신의 삶을 오랫동안 휘저어 왔기에 이제는 그 과거를 자신의 삶에서 덜어내는 일을 하고자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이라 했다. 그때도 이해가 힘들었지만 지금도 쉽게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상담 교육을 받으면서 그 리고 트라우마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엉킨 매듭을 하나하나 푸는 과정을 거쳐 과거를 털어낼 필요에 대해서는 배웠다.
김태경 작가의 [용서하지 않을 권리] 읽으면서 전율이라고 해야 하나 많은 자극을 받았다. 형광펜으로 미친 듯이 줄을 그으며 하루 한 챕터를 읽는데 이 책은 재독 삼독을 해야 할 책이다.. 용서를 하는 것도 피해자의 권리이지만 하지 않는 것도 피해자의 권리다. 사람마다 상처의 회복 과정이 다르다는 것을 어느새 우리는 잊어버렸던 것 같다. 몸에 난 상처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지만 경우에 따라 흔적이 남는다. 그리고 그 흔적을 볼 때마다 그 상처를 입던 순건이 생각나 아픔을 느낀다는 이들도 있다. 마음에 입은 상처는 몸에 입은 상처의 몇 배 이상의 시간을 회복하기 위해 요구한다. 그러나 이들의 회복 과정에 대해 주변에서 던지는 말들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사실 나는 잘 몰랐지만 얼마나 큰 상처를 그것을 통해 입게 될 수 있는지도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정말 운이 좋아 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았고 주변에도 그런 사람은 없지만 ,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도 모르게 그 피해자들을 상처를 입힐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아찔함도 느꼈다. 사랑의 원자탄이라 불리는 손양원 목사님을 아는 이들이 많겠지만 손양원 목사님의 사모가 겪은 일을 아는 이는 없을 것이다. 목사님의 사랑과 용서는 놀라운 일이었지만 , 그 배려가 아들 둘을 갑자기 잃은 배우자에게는 도달하지 못한 이야기를 듣고는 정말 많이 놀랐다.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보아도 사모님 이야기는 자세히 나온 게 없지만 상당히 오랜 기간 마음의 병을 앓았고 자녀들과 떨어져 살았다는 이야기로 미루어 남편이 한 용서가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으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우리 집도 얽힌 실타래를 품고 있는데, 그 얽힘을 만든 이를 용서하지는 부모님과 그에 반발하는 동생 사이에서 나는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상처를 입은 이의 곁에서 할 일은 울 때 같이 울어주고 필요한 게 있으면 조용히 채워주는 것이란다. 쉬운 일이 아니다. 함부로 용서를 말해서도 회복을 말해서도 안 된단다. 정말 많이 어렵다. 내가 크리스천이라고 말하고는 다니나 용서의 이슈 동행의 이슈를 접하면 초라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