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아침 소묘
동생과 고모는 사이가 좋았었다. 무뚝뚝하고 때로는 차가운 나와 달리 동생은 어릴 적 곰 살 맞아 사람들의 비위를 잘 맞췄다. 집안을 뿌리째 흔드는 문제를 두 사람이 만들 때도 나나 부모님 어느 누구도 몰랐다. 나중에 알게 되고 그것을 수습하려고 분주하다 우리 셋 치 명상을 입었다. 그게 20년 전이다. 우리 가족은 모두 그 상처에서 회복되지 못했다. 다른 집이라면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일가족 모두 세상을 버렸을지도 모른다. 정작 일을 만든 고모와 동생은 서로 원수가 되었다. 객관적 시각으로 내가 보기에 둘 다 잘못했는데도 둘은 서로를 비난했다. 오랜 시간 고모와 왕래가 없었다. 문제가 생긴 것은 아버지가 치매가 생긴 후다. 아버지는 고모가 동생과 얽힌 부분을 모두 잊으셨다. 기독교의 용서의 정신에 입각한 게 아니다. 그냥 머릿속 기억의 방에서 고모와 동생이 얽힌 사건이 다 사라진 거다. 아버지는 국내에 남아있는 여동생( 나머지 하나는 미국에 산다. )이 왜 연락이 없는지 궁금해하시며 전화를 걸더니 고모를 만나기 시작했다. 고모는 아버지의 병증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 일 없는 듯 집에 드나들었다. 동생의 분노가 폭발했다. 나는 그냥 똑같이 잘못한 사람들이기에 둘의 사건에 별 느낌이 없었다. 멍청하게 소용돌이에 휘말린 내 잘못도 있는데 무얼 탓하랴 하는 그런 정도의 감정이었다. 고모를 좋아하지도 특별히 내 영역에 끌어들이는 것에 긍정적 감정도 없는 지나가는 행인 정도를 보는 기분이었는데, 동생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분노를 억제 못한다. 그리고는 아버지를 비난했다. 자식이 싫어하는 사람을 어떻게 만나냐... 아버지가 누굴 만나건 아버지 문제 아닌가
문제는 추석 아침 예배에서 어머니가 용서를 이야기해서 생겼다. 올케랑 조카 둘도 있는데 동생은 예배 장소를 뛰쳐나가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가 끝날 무렵 돌아와서 지 가족을 챙겨 떠났다. 어머니에게 뭐라 하고 싶었지만 워낙 용서와 화해로 똘똘 뭉치신 분이니 그냥 포기했다. 지난번 지나가는 말로 고모 이야기는 동생 앞에서 하지 말라 당부했는데도 아버지처럼 기억의 방에서 그 소리를 내보냈나 보다. 분노든 용서든 화해든 마음에 남은 이에게 하는 것인데, 동생의 마음엔 아직 고모가 남아 있나 보다. 모처럼 허접한 식사라도 함께 나누는 자리를 망쳐버린 자체, 내가 힘들게 만든 음식이 외면받은 게 화난다. 에효.... 추석은 가족이 모여 정을 나누는 자리라지만 우리 집은 한 줌도 안 되는 식구사이에 찬바람만 불다가 오전이 지났다. 지친 나는 이불 뒤집어쓰고 누워 음악만 들었다.
고모는 닭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