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피해자의 죽음
피해자가 용기를 내 세상에 나서도 이들을 향한 온라인 2차 가해는 빈번해 논란이 돼왔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몸에 상처를 입으면 그 상처의 원인, 그리고 적절한 치유 여부 등에 따라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회복된다. 물론 외과적인 수술등을 하는 경우 흉터가 남기는 하지만 일단 회복은 된다. 이런 상처조차도 사람의 체질에 따라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회복 속도에 차이가 있다. 금방 회복되어 괜찮은 이도 있지만 유독 오랜 회복시간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처의 회복은 그래도 수년의 시간을 필요로 하거나 계속 치료를 요구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물론 환상통이라 하나? 심한 상처의 경우는 그 부위를 건드리면 통증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치료 방법도 다르고 회복 시간도 다르다. 그리고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 원인에 따라서도 회복을 위한 시간이 각각 달라진다.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 오랜 시간이 지난 거 아니냐 반문할 만큼의 시간 후에도 상처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이 있으니 말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적절한 도움에 의한 치유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혼자 힘으로 극복하려고 발버둥 치다가 실패하는 이들도 제법 되고 극복 시도조차 못하고 가라앉아 단절된 사람도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의 상처는 참 어려운 문제다.
동아일보 2023. 10.10일 기사에 상처에서 회복되지 못하고 결국 삶을 포기한 여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표 씨는 이날 자신의 유튜브에 ‘유서 이제 그만 편해지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으로 12분 6초 분량의 영상 한 편을 올렸다. 영상 속 표 씨는 “이젠 더 이상 이 고통을 감내하고 이겨낼 자신도, 이겨내고 싶지도 않다”며 “하루하루가 목이 막히는 고통으로 인해 삶을 지속해야 할 그 어떠한 것도 남아있지 않다”라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나를 죽게 한 사람은 학교 폭력 가해자들”이라며 “제 청원이 잊히지 않고 본회의에서 통과돼 법이 개정될 수 있게 도와달라”라고 했다.
그녀는 초·중·고 12년간 학교폭력을 겪었다고 공개하며, 2023년부터 SNS·유튜브를 통해 피해를 알렸었다 그러나 2차 가해(온라인 괴롭힘·명예훼손 고소전 등)도 이어졌다. 부산 피해자가 용기를 내 세상에 나서도 이들을 향한 온라인 2차 가해는 빈번해 논란이 돼왔다. 학폭 피해 경험자의 자살사고: 한국청소년학회 연구를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학폭 피해를 겪은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극단선택 시도 가능성이 약 2.6배 높다고 보고되었다. 경향 EBS 보도는 2023년 5~6월의 연쇄 사건을 언급하며, 조치 이후에도 피해학생 3명 중 1명은 회복하지 못하고 극단선택 고려가 증가한다는 조사 결과를 전했다. EBS 그 외에도 학교폭력 피해 호소 → 보호·회복 실패(혹은 2차 가해) → 극단 선택 이런 패턴을 보이는 사건이 꽤 발견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 경험을 공개한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니 정말 오래되었다. 그 무렵에는 왕따라든지 학급 내 괴롭힘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있었지만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성적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미수에 그 친일등은 그때도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괴롭힘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뉴스 같은 건 본 적 없었다. 그런데 내가 괴롭힘을 당했다. 워낙 사람에게 무관심한 성격이어서 특별히 친한 친구도 없지만 누구랑 얼굴 붉힐 일도 없었는데, 딱 한번 반에서 잘 나가는 아이의 성질을 건드린 일이 있었다. 그 아이가 짝사랑하는 담임 선생님을 자주 만나 보고서를 제출하는 뭐 그런 거였던 것 같다. 강산이 네 번 바뀌고 나니 무슨 보고서였는지는 생각이 안 난다. 공부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 나도 꽤 흡족해한 일이었다. 그 아이가 그걸 자기가 하겠다고 양보해 달라기에 싫다고 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그때부터 그 아이는 지 추총세력(?) 암튼 그런 애들과 함께 한여름 매미 울듯 내 주변에서 떠들어댔다. 주로 내 옷차림 그리고 외모 말투 등등이 비꼼의 대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 질문에 답을 잘해 칭찬받으면 또 잘난 척한다는 비아냥이 잇달았다. 학교 공부를 나도 제법 하는 편이었고, 임원 선생님들 중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분이 좀 있어 나를 대놓고 뭐라 하지는 못하니 시끄럽게 주변을 맴돌며 귀찮게 했다. 학년이 바뀔 무렵 나는 학교에 같은 반 안되게 배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나야 당시로 따지면 요즘이야 형편없지만 백이 있어서 그 학년을 무사히 넘겼고 물론 내 성질도 만만치 않았지만... 조금 심약한 아이였으면 고통을 꽤 받았을 거다. 강산 네 번 바뀌었는데도 나는 그 아이 이름과 얼굴이 생각난다. 태어나서 처음 받은 일종의 집단 괴롭힘이 나같이 굵은 신경 줄 지닌 사람도 힘들게 만들었는데 회복이라 할 것도 없는 그 과거도 기억에 남아 있는데 요즘 학교 내에서 겪는 괴롭힘은 읽어 보는 것만으로도 그 피해자의 고통이 내게 느껴지는데 당사자 인 피해자는 어떠랴.
적절한 그리고 충분한 심리치료가 필요하다. 치료 과정을 거쳐 스스로가 상처를 마주하고 싸워 이기기까지 사람마다 필요한 시간이 다르다. 오래전 일을 왜 끄집어내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다? 이건 피해자가 아닌 사람들이 가하는 2차 폭력 중 하나다. 치료과정을 거쳐 회복을 하지 못하면 상처는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 회복의 과정을 밟느냐 하는 것인데 함무라비식 보복이 허용되지 않는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상처를 과거 완료로 만들 수 있을까?
주변에 심리적 상처를 어떤 종류든 입은 사람이 없다면 복 받은 것이다. 그러나 있다면 그리고 그게 본인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라면 한 가지만 기억하자. 당사자를 이해한다 네 맘 다 안다는 등의 말하지 말라. 절대로 피해자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되지 않는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폭력적인 말을 하지 말라. 회복은 기나긴 여정이고 힘들 것이라는 것 하나만 확실히 이해하고 그냥 곁에서 조용히 머물다 뭔가 필요로 하면 도와주라. 거기서 회복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