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잘한다는 것

자칭 타칭 똑똑한 한 청년을 보고

by 아이린

나는 말을 잘하는 편이다. 나를 대충만 아는 이들은 네가? 이러겠지만 젊은 시절의 나는 부끄러울 정도로 송곳 같은 언변을 보이는 사람이었다. 나는 심기가 거슬리면 상대방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잘근잘근 밟아 껍데기를 벗겼다. 토론대회 같은 게 내가 대학시절엔 없었지만, 내 성품 자체가 내성적이고 낯가림이 심해 공적인 자리에 나가기를 싫어한 탓에 대표로 나가거나 뭐 장을 맡거나 이런 것을 거부했기에 있어도 안나갔을 거다. 이런 나도 발동이 걸리는 일이 가끔 있다. 누군가가 하는 말이 내 나름의 필터에 거칠게 걸리면 그것을 적립해 기회를 보고 적당하다고 판단될 때 까뒤집어 망신에 가까울 정도로 몰아붙였다. 논리적인 부분이나 팩트에 대해 반박을 받아본 일은 없다. 그러나 나는 어느새 내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 못돼 처먹은 인사가 되어 있었다. 학부 대학원 내에서 나는 어느 틈에 외로운 섬이 되어버렸다. 대자보를 한 글자도 틀리는 것 없이 일필 휘지로 써 내려가는 것 나름 굉장한 글이라고 평가받던 것 다 소용없는 일임을 학내분쟁에 휩쓸리고 그 와중에 논문을 써야 하는 스트레스 그리고 사람들과의 갈등이 겹쳐 아침에는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고 신경성 위염에 시달릴때 배웠다. 나에게 모욕을 당했다며 나를 고소한 선배 때문에 경찰서도 드나들었다. 물론 나중에 교수님의 중재로 해결했지만 , 나는 이 과정에서 말의 무서움을 배웠고 글의 무서움도 배웠다.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글쎄 배웠다고 해야 하나 이후에 내 행보를 보면 인간 혐오증이 커진 것 같긴 한데...


가끔 유튜브의 방송을 듣는다. 주로 듣는 건 설교 어학 그리고 다큐지만 가끔 알고리듬에 뜨는 것을 보기도 한다. 거기서 한 젊은이를 봤다. 청와대 행정관을 했던 (?) 전력이 있다나 아무튼 과거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그 젊은이가 나오는 것을 몇 번 더 보다가 중단했다. 왜냐고? 똑똑한 것은 알겠다. 그러나 그는 자기 의가 지나치게 강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다. 그리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여러 해 전 이런 생각을 가지고 말하고 행동하는 이를 일베라고 했던 것 같은데.. 결국은 그의 언행은 사달을 냈다. 뿌리 깊은 여성 혐오에 더해 열등감이 시각장애인인 김 모 국회의원에 대한 막말을 쏟아냈고 매스컴은 기회를 본듯 그를 비판했다. 그가 대변인 직에 사표를 내려 했단다. 그러나 주의만 주고 반려한게 당대표하지? 그게 주의로 끝날 일인가?


한 게 뭐 있느냐고? 여자라는 것 장애인이라는 거 외에 뭐가 있느냐고? 최소한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그리고 생각하는 어디 한 군데라도 불편함을 겪어 본 적 없는 이 아닌가? 장애인의 수 비율로 따지면 국회의원 수가 더 있어야 한단다. 사실 양념처럼 한 두 명에게만 기회가 주어지고 그나마 한 사람이 두 번 그 기회를 가졌다. 두 번 기회를 주는 것을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다른 장애인에게 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말을 한 것도 아니더라. 그 의원이 윤 어게인을 외치는 측이 아니라서 더 맘에 안 들었나?


여성이 엄청난 기회를 누리는 줄 알지만 나만 해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못했다. 성적이 나보다 못한 동기들이 은행 그리고 대기업등에 원서를 내고 들어가는 것을 보며 나는 울었다. 여자는 안 뽑는다는 말을 대놓고 듣던 시대 사람이다. 요즘은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여자는 머리 위에 유리 천장을 지닌다. 그리고 장애인은 또 하나의 천장을 더 지닌다.


대학 다니던 무렵 , 한빛 맹학교에 자원봉사를 간 적 있다. 거기서 나보다 조금 어린 젊은 친구를 만났었다. 중도 시각장애가 된 사람이다. 사고로 눈이 먼 것도 아니라 유전적인 문제였단다. 그 사람의 어린 동생도 거기 있었다. 그 동생도 시각을 잃어가는 중이었다. 대입을 준비하다 완전히 시력을 잃고 점자를 배우고 당시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 하는 안마를 배우러 왔단다. 그는 상당히 잘생긴 사람이었다. 뭘 하고 싶었냐 물었다 . 배우를 해도 될 외모였기에 배우 하고 싶었냐 물으니웃었다 웃기만하고 말이 없었다.눈이 먼 후 몇 번 자살 기도를 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는 괜찮냐 물으니 여전히 죽고싶어지는 감정과 싸운다고 했었다. 장애는 그것을 극복하려고 하는 것만으로도 인정받아야 한다. 눈멀고 여자라는 것 말고 뭐가 특별하냐? 특별하다 한가지 말고 두가지 핸디캡을 지닌게 어떻게 특별하지 않나?


말은 참 무서운 것이다. 나는 이제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으려 애쓴다. 가끔 감정이 흘러 넘칠 때 글을 쓴다. 여기에도 쓰고 블로그에도 쓰긴한다. 인기는 없다 읽어주는 이도 거의 없다. 그래서 어떤면에선 다행이다. 위로하는 글을 쓰고 싶은데 웃게 만드는 글을 쓰고 싶은데 잘 안되서 안타까와 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 젊은 친구 나이가 얼마인지 정확히 모르나 하나님이 눈을 두 개 귀를 두 개 입은 하나 주신 이유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정말 말을 잘하는 사람은 위로를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다. 정말 똑똑한 사람은 상처를 감싸주는 사람이다. 내 소중한 조카에게 늘 하는 말을 그에게도 하고 싶다. 네가 들어 상처일 것 같은 말은 남에게 절대 하지 말라고.. 그 말이 언젠가 너에게 돌아온다고.

20251116_090321.jpg


작가의 이전글오래간만에 정리해 보는 론스타사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