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소통
나이를 먹었다면 먹었고 요즘 어른 말대로 어리다면 어린 나이인데, 극에서 극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면 참 걱정이 되고 불안하다. 좋아하 는 것에 따라 뜨는 알고리즘을 처음 체험한 후, 나름 한쪽으로 고착될지도 모르는 사고에 걱정이 되어 정치적인 것은 아예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사실 내 머리로 이해가 불가능 한 일도 많았다. 심심산골에 홀로 사는 것이 아닌 한, (뭐 그런 거 나는 자연인이다 처럼 말이다 ) 사람과 부대낌을 아예 피할 수는 없다. 그리고 한 부모 뱃속에서 나오고 자라도 시간이 가면서 달라지는 게 인간이다. 쌍둥이조차 달라진다잖나. 나와 다른 이는 있을 수 있고, 내가 언제나 옳을 수는 없기에 나와 생각이 다른 이의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이라는 게 한마디로 정의되는 존재가 아닌데, 그런 사람 각각을 한 마디로 정의하고 판단할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게 사 회기에 법이 필요하고 여러 가지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어릴 적 뭐 그렇게 어릴 적은 아니나 학교 교육을 받기 시작한 이후 내 머릿속에 자리 잡은 상식이 깡끄리 무너지는 사회를 보니 숨이 가쁘다. 얼마 전 사망한 찰리 커크와 같은 류의 극단주의 우파. 개딸로 분류되는 극단주의 좌파 내 생각과 다르면 다 적이며. 우리 편으로 분류할 수 없으면 다 박멸해야 한다는 류의 사고에 경기를 일으킬 지경이다. 상식이라는 것이 사라지고 논리라는 것이 사라진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김성칠이라는 역사학자의 일기에 좌우 양극단에서 어느 쪽에도 설 수 없는 이의 복잡한 심경을 읽은 적 있다. 그때보다 어떤 면에선 지금이 더 심각한 때가 아닐까?
자기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이들만 접하다 보면 반대 의견은 차단되고 세계관이 좁아지고 반대진영을 적대시하게 된다. 즉 정보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정체성 소비를 통해 분열은 계속된다. 이러다 보면 “팩트”보다 “감정적 선동” “정책”보다 “사람 공격” “합리적 비판”보다 “낙인·모욕”을 하면서도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게 된다. 정치인을 연예인처럼 idol 화하고 비판을 하면 배신자·적·알바 취급하며 내부 비판마저 금기시한다. 전열을 흐트러트린대나. 당원 게시판의 비판글에 대해 청산 운운하는 이들의 사례처럼 소위 이 세력의 지도층들은 의견의 다양성 대신 관용의 붕괴를 통해 나름의 세력을 구축하며 선동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공고히 한다.
토론을 하지 않고 합의는 남의 나라 이야기로 나가면 정치는 단기 인기 정책만 추구하게 되고 선거를 할 때는 부정선거론 운운하며 기존의 시스템을 부정하고 상대방은 적으로 여기는 전쟁만 하게 된다. 계엄도 할만하면 하는 거다라는 막말,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은 판결을 할 때는 법왜곡죄 운운 하는 여와 야의 이야기를 보며 내란 전담 재판부라는 왜곡된 시스템으로 사법의 영역에 아무렇지 않게 고개 들이미는 이들을 보며 이 광기의 시대가 어떻게 해야 끝이 날지 암담해진다. 20대는 이미 그른 것 같고 , 미성년이라도 바른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이것도 힘들 것 같다.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함에도 아무렇지 않게 정치성향에 입각한 교육을 하는 이들, 좌우 똑같다. 혐오와 증오의 시대를 끝낼 방법은 정녕 없는 건가?
토론 불가능, 합의 무능
정책
단기 인기 정책만 부각, 이성적 논의 실종
민주주의
사회적 신뢰 붕괴, 선거가 “적과의 전쟁”으로 변질
시민성
상대를 설득하지 않고 제거하려는 태도 확산
결국 민주주의에 필요한 관용, 토론, 타협, 합의 능력이 사라진다.
대한민국의 온라인 극단화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 확대로 착각되지만 실제로는:
다른 의견을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만들고, 소통 가능성을 파괴하는 과정이다.
정치는 갈등 조정의 기술인데
온라인에서는 정치를 갈등 증폭의 도구로 소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