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라...

어려워도 가야 할 길

by 아이린


에베소서 4:31–32: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하라.

마태복음 6:14–15: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용서하지 아니하면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태복음 18:21–22: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누가복음 6:37: 비판·정죄하지 말고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도 용서를 받을 것이요.

누가복음 23:34: 예수께서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요한일서 1:9: 죄를 자백하면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시편 130:4: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이사야 1:18: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골로새서 3:13: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하라.


용서에 대해생각해 볼 때 가끔 억울한 기분이 든다. 내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이 용서라는 이슈가 더 힘든 걸까? 살아가면서 피를 토하고 싶을 만큼 창자가 아릴 만큼의 억울함을 경험하지는 못했다. 그냥 일상에서 경험하는 소소한 분쟁 정도다. 범죄 피해를 입은 일도 없고(뭐 사기 한번 당했다. 보이스피싱) 내 가족 중에도 그런 사람은 없다. 스스로 잘못 살아 소위 지 팔자 지가 꼰 인간은 우리 집에도 있지만, 그들 역시 스스로를 해쳤을 뿐이다. 그들의 부모도 피해자인가? 일단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이는 없다.


간음을 저지른 여자를 끌고 와 돌로 치려는 이들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치라하신 주님을 생각하면 피해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가 가해자를 비난함이 옳은지 그 생각도 든다만 말이다. 왜 예수님은 그리고 성경은 용서를 이야를 하셨을까? 말도 안 되는 수를 말씀하시면서 말이다. 일흔 번씩 일곱 번 즉 이 숫자는 무한대를 의미한단다. 490번 용서하고 그치란 말이 아니다. 끝까지 용서하란 말이다. 잔인하지 않는가? 어떻게 용서하겠나? 만약 그 사람이 내 가족을 상하게 하고 나 자신을 상하게 했다면 말이다. 나는 용서할 수 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그러나 나이가 이만큼 먹고 나니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누군가를 마음에 두고 계속 미워함은 상당한 기운이 요구되는 일인 것을 말이다.


십자가의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가해자를 용서하고 위해 기도한 예수님을 볼 때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음이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도 가끔 든다. 진자 가끔이다. 나는 예수님이 말한 용서가 사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성경은 제단 숯불을 그 사람 머리 위로 올리고 너는 하나님만 경배하라고 하셨다. 원수 갚는 일이 내게 있다고도 하셨다. 나는 용서한다고 가해자를 내 삶에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격이 별로 좋지 않아 자주 불같이 화를 내는데 사실 뒤끝은 없는 편이다. 화조차 내지 않아야 하지만 죽는 순간까지 그건 힘들 것 같다. 그러나 나를 화나게 하고 아프게 한 이들 그리고 그 상황을 오래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이 첫째고 계속 그 감정을 마음에 두고 살자니 몸이 너무 힘들고 기운 없어서다.


마음에 한을 오래 품고 사는 피해자가족들 피해자 많다. 사건이 일어난 그 시간에 삶이 멈춰버린 사람들도 많다. 그것을 비판할 수는 없다. 속히 앞으로 나가라고 재촉할 수도 없으며 그러지도 않을 생각이다. 실컷 울고

화낼 만큼 화내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분들이 이것 하나만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상실의 슬픔 그리고 분노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뒤에 두고 앞으로 나갈지 아니면 아예 인생에서 의미 없는 존재로 털어버릴지 뭐 등등의 선택을 하는 게 필요할 수 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


새로운 의미의 용서를 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벌어진 일은 사실 어쩔 수 없다. 깨진 항아리는 다시 붙일 방법이 없다. 깬 사람을 비난해도 깨지기 이전으로 돌릴 방법은 없다. 형사 처벌이 필요한 인간인 경우는 집요하게 법적 처벌을 요구하고 최종 판결 이후에는 그 사건이 그 삶을 흔들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벌어진 일과 상황은 어쩔 수 없지만 그것에 대한 반응은 선택할 수 있으니 말이다. 많은 아픈 사람들이 그들의 인생에서 벌어진 아픈 일이 그들의 삶을 흔들지 못하게 앞으로 가는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 세상에서 말하는 용서를 하라는 게 아니다. 나를 숨 쉬고 움직이는 것은 나이지 벌어진 과거의 일이 아님을 그리고 그 일들이 나를 좌우하지 못함을 스스로 깨우치고 살아나간다면 그것이 용서가 아닌지... 흔들림을 당하기엔 너무 소중한 인생 아닌지...


그냥 얼치기의 생각을 좀 정리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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