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사법 1
오래전 KBS드라마로 마왕이라는 것이 있었다. 드라마는 소년 시절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숙명적 대결을 펼치게 되는 두 남자와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는 서스펜스 드라마였다. 사소한 상처도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이 인간의 삶을 지배한다는 것 그리고 사회전반에 깔려있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크고 작은 무심한 폭력과 차별이 인간을 얼마나 불행하게 하고, 영혼을 황폐하게 만드는지, 그로 인해 피해자 가해자 모두가 치러야 하는 희생의 대가가 얼마나 아픈 것인가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려고 하는 의도를 가진 드라마였다. 가해자였던 그리고 피해자였던 이의 치유받지 못한 삶이 만들어낸 일그러진 사건들이 참 인상 깊었다. 드라마는 어떤 악의나 불의 앞에서도 자신의 인간다움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의라고 말했다. 아무튼 치유받지 못한 범죄의 가해자 피해자 두존재의 시각에서 풀어나가는 내용이 참...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응보적 사법이 정답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나 응보적 사법 집행도 변변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을 보면서 회복의 사법을 이야기 함은 아직 이른 담론이 될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느낌도 있다.
최근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이 새로운 영역에 대해 알게 되었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이 대화는 가능할까?라는 제목의 이 책은 성범죄 피해자와 그 가해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완독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이 책으로 인해 회복적 사법이라는 분야에 관심이 생겼다. 검색을 해서 인터넷의 자료를 좀 읽어봤다. 책도 찾아보니 정말 많다. 회복적 사법은 내가 공부하고 싶은 분야와 내가 공부했던 분야 내 신앙의 영역을 모두 포괄하는 테마인듯하다. 광범위한 이야기를 풀어낼 능력이 없으니 우선 이 책이야기로 내가 이번 글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해볼까 싶다.
범죄의 피해자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사실 없다. 하루에도 여러 건의 이러저러한 범죄가 일어나면서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니 일회적인 흥밋거리 정도로 그런 사건들을 소비한 것이 나를 포함한 다수의 사람의 이야기 일 것이다. 그리고 가해자 특히 같은 범죄를 반복하는 이들, 교도소 문을 회전문으로 여기듯 드나드는 범죄자들에 대해서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들이 재범을 하면서 생기는 사회적 경제적 부담 역시 찾아보지는 않아도 상당할 것이다.
앞서서 이야기한 여러 범죄자들 그리고 피해자들의 이야기와 연장 선상의 이야기가 될지는 모르겠다.
범죄는 에스컬레이팅 되고 피해자는 늘어나며 운 좋게 생존한 피해자는 엄청난 트라우마에 시들리며 고통받는데 잡고 가둬뒀다 일정 시간 되어 풀어주면 끝일까? 피해자는 끝도 없는 고통에 계속 시달리는데 그 치유 외 회복은 당사자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영역일까?
지은이는 모든 종류의 폭력을 중독의 시각에서 보고 있었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과 다르게 도박 중독과도 다르게 폭력의 동독과정 특히 성폭력의 중독과정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은 내 경험이 일천해서인지 들어보지 못했다. 심리 치료 단 게에서 성에 대한 뭐라고 하나 중독 치료를 하기도 한다는데, 성범죄로 수감된 이들에 대한 치료 혹은 출소한 이들에 대한 치료 뭐 이런 것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인으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일본에서는 활성화까지는 아니어도 첫걸음은 뗀 것 같은데..
그냥 오늘 하루 저지르지 않았다에서 끝나서는 안되고 내가 왜 그럴까? 그리고 이런 상태를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음주, 약물, 도박에는 치유를 위한 단계를 밟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리고 그 단계를 밟은 사람들은 자신이 완치된 것이 아님을 그래서 매일 최초의 단계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들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음주 약물 도박 등으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에 대해 알아감으로 다시 재범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러일으키게 된단다.
책을 읽다가 문득 피해자보고 가해자를 용서하라는 강요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나는 원래 인간의 선의를 믿지 않는다. 그리고 뺨을 때리는 이에게 다른 그래서 매일 뺨을 대주거나 옷이 필요한 이에게 겉옷을 넘어 속옷까지 줄 위인도 아니다. 그러나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조금씩 상처를 오래 끌어안고 사는 게 과연 답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용서를 강요해서도 강요받아서도 안 되지만, 내가 가진 그 상처를 끌어안고 사는 것이 , 그 상처를 준 이를 증오하며 사는 것이 과연 바람직 한가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기는 너무 힘든 일이다. 그래서 은혜는 돌에 원한은 물에 새기라고 누가 그랬나?
국제 보건기구가 발표한 PTSD의 문제에 있어서 사고나 재해의 경우는 지속 시간이 약 41개월 정도지만 성폭력과 같은 폭력은 그 지속시간이 평균 110개월 그러니까 10년 또는 그 이상에 달한단다. 10년은 보수적으로 잡은 수치다. 더 가기도 한다. 우리가 이런 사건이 있었대 하고 듣고 넘어가는 그 사건의 피해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기간 동안 고통받는다. 그들에게 회복은 남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럼 가해자는 어떤가? 첫 범죄 이후 사법적 제재를 받은 후, 그들 역시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던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 만약 그들이 재범을 하지 않는다면, 잡힐 것이 두려운 탓이지 자신의 잘못이 타인에게 끼친 영향을 깨닫고 반성해서가 아니다. 이런 그들이 재범을 하는 경우는 들키지 않기 위해 잡히지 않기 위해 더 잔인해진다.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은 단순히 '법을 어긴 사람에게 어떤 벌을 줄 것인가?'에 집중하는 기존의 응보적 사법에서 벗어나서, '범죄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패러다임이다 쉽게 말해, 가해자를 감옥에 보내는 것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가해자가 자신의 책임을 진심으로 통감하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 이 회복적 사법의 목적이다.
두 개념의 차이를 이해하면 회복적 사법의 특징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응보적 사법 (기존 ) 회복적 사법 (대안)
관점
법 규정 위반 (국가 vs 개인) 인간관계의 훼손 (피해자 vs 가해자)
핵심 질문
어떤 법을 어겼고, 누가 그랬나? 누가 피해를 입었고, 무엇이 필요한가?
목표
고통을 주는 처벌 (응징) 피해 회복 및 관계 복원
주요 주체
판사, 검사, 변호사 (전문가 중심) 피해자, 가해자, 지역 공동체
책을 읽다가 초반에 걸리는 내용이 있었다. 피해자에게 범죄는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유일무이한 사건'인 반면, 가해자(특히 상습범이나 직업 범죄자)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일상의 한 조각'일 수 있다는 그 인식의 비대칭성이 그것이었다. 가해자는 의도적으로라도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잊으려 하지만 피해자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저자는 가해자에게 피해자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자신의 행위가 불러일으킨 결과를 인식시키는 과정이 없으면 재범률을 낮출 수 없단다. 어떻게 회복이 가능할지 항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사례나 뭐 이런 것도 더 책을 읽어봐야겠지만 어렵기만 하다.
일단 책의 한 구절 " 하루 1분이라도 매일 피해자를 떠올려 주세요"라는 말로 이 글을 맺겠다
가해자가 매일 1분이라도 피해자나 자신으로 상처 입은 이들을 떠 올릴 수만 있다면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려나? 여기서 떠올림은 얼굴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이 저지른 사건의 내용을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