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해보셨나요?

2021년 겨울

by 아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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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받은 보급품이다. 샴푸 물 칫솔 치약 1인 가구에 덕용 샴푸 바디클렌져 저 많은 칫솔이 무슨 필요가 있나. 나는 먹을게 필요했는데 삼다수 마시며 물배 채우라는 건지...


아버지가 치매 진단받기 몇 년 전 그러니까 코로나가 막 발발 했을 때 우리 아버지는 코로나 감염자가 되었다. 아버지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셨다. 아무도 아버지의 루틴을 깰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고집스러운 루틴이 지금의 아버지를 만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어느 날 열이 오르고 기침이 심해지고 목이 아픈 상태가 되셨다. 열은 금방 가라앉았지만, 내장을 다 쏟아낼 듯 기침을 하셨다. 원래 알러지성 천식이 있는 분이라 천식이 심해진 건가 싶었다. 처방을 받아둔 약을 드셔도 진정이 안 되는 기침 때문에 잠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는 지경까지 되었다. 어머니와 나는 서울에 있고, 아버지와 동생네가 시골에 있던 때였다. 주말에 아버지를 만나고 서울에 오신 어머니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문득 드는 생각 때문에 동생에게 아버지랑 너희 가족 코로나 검사받으라 말했다.


날이 지독하게 춥던 날 줄을 서서 검사를 기다리던 동생은 내게 전화를 해서 유난 떤다고 욕을 했다. 다음날 바로 결과가 나왔는데, 아버지가 코로나에 감염된 것이다. 동생 가족은 괜찮았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서울에서 검사를 받았다. 아버지는 김포 어딘가 병원에 입원하셨다. 어머니와 나의 검사 결과는 양성이었다. 보건소에서는 각각 격리를 하란다. 어머니를 동생 차에 태워 아버지가 안 계신 집으로 보냈다. 어머니와 나 둘이 한 공간에 있는 건 안된다는 보건소 담당자와 전화로 싸웠지만 방법이 없어서 한 겨울에 차창을 열고 동생이 운전하여 어머니를 모셔갔다.


나에게 빨리 집으로 들어가라는 보건소 직원 말에 얼떨결에 급하게 집에 간 것이 내게는 재앙이었다. 집에 먹을게 아무것도 없었다. 담당자는 장이라도 봐서 먹을 걸 챙길 시간도 주지 않았다. 집에는 냉장고엔 음료수 몇 병 그리고 냉동실 아이스크림 라면 두 개가 전부였다. 하루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견뎠다. 라면을 국물 많이 넣어 끓여 먹고 국물로 배를 채웠다. 보건소 직원에게 전화해서 항의하니까 보급물품을 보내줬다. 열어보니 기가 막혔다. 물티슈 치약 칫솔 비누 3분 카레 몇 개 두루마리 휴지 몇 개.. 나는 배가 고프다고 먹을 걸 달랬는데, 기가 막혔다. 위생에 문제가 생겨 내가 코로나 감염된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나는 인터넷 주문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모바일 뱅킹 신청을 굳이 할 필요가 없었기에 필요하면 조금씩 돈을 찾아 썼던 나는 당혹스러웠다. 무통장 입금도 안되고 카카오 뱅크가 아닌 우리 은행은 지금은 모르겠다. 모바일 뱅킹 신청을 은행서 해야 했다. 지금은 안 가도 되나? 암튼 난감했다. 아래 사는 집주인에게, 먹을 것 사서 가져다 달라 할 수도 없고 , 친구들은 하나는 미국 하나는 일본에 있다. 도와줄 이가 없었다. 교회마저 광화문에 가서 예배만 드리고 오니 누가 있겠나. 주변에 말이다. 사촌동생이 이마트에서 쌀 김치 라면 등등을 주문해배달시켜 줬다. 굶고 있다는 언니를 챙겨준 동생이 지금 생각해도 고맙다. 코로나로 인해 자가 격리 한 시기는 성탄절부터 신년까지였다.


생일 성탄절 신년 나는 혼자 집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사촌이 보내준 음식을 먹고 버텼다. 코로나 격리가 끝나고 바로 모바일 뱅킹을 신청했다. 또 격리될 일은 없어야 하지만, 먹을 것 하나 주문 못하는 처지가 얼마나 비참한지 체감해서다. 우리 동생 놈은 누나에게 먹을 것 보내줄 생각도 안 했다. 시간이 이제 많이 지났다. 그러나 2021년 그 겨울 혼자 겪은 배고픔은 아직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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