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하자.
책을 좋아하지만 그다음으로 내가 정신 못 차리는 것은 문구다. 연필 볼펜 만년필 노트 지우개 자 기타 등등
내가 사서 가지고 있는 물건의 양은 죽을 때까지 써도 다 못쓰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정상적인 사람이면 한두 가지로 필기구에 만족해야 하는데 나는 하나에 꽂히면 그 계열에 유명한 것은 다 써봐야 성이 풀리는 몹쓸 버릇을 가지고 있다. 아주 안 좋다. 지금도 내 책상 위에는 한 뭉터기의 펜류가 내 손길을 기다린다
노트도 많다. 이사할 무렵 내 노트 뭉치를 본동생이 욕을 하며 버리라고 난리였다. 그래서 다 쓴 노트는 눈물을 머금고 버렸다. 지금 내 곁에는 쓰는 중인 것과 아직 손을 못 댄 것만 남아 있다. 어릴 적엔 나만의 도서관 나만의 서재를 가지는 것이 꿈이었다. 책이 잔뜩 잇는 곳에서 책도 읽고 발췌한것을 노트에 정리하고 그것을 읽고.. 아직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좁디좁은 방에서 노트북에 글을 쓰고 쌓아놓은 걸 무너뜨리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책을 꺼내 읽는 뭐 이런 삶이다
다이소에서 산 노트 해외여행 다닐 때 산 노트 그리고 그 위에 쓴 것들 나하고 끝까지 함께 할 줄 알았지만 점점 작은 곳으로 이사하다 보니 버릴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은 쓰지 않았다. 메모를 남기면 무엇하나, 사진을 찍으면 무엇하나 극당적인 허무함이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뭐 몸이 점점 말을 안 듣기도 했다만 말이다 주로 사용하는 노트는 미도리와 몰스킨이다. 그 외에 로이텀도 좋아하고 인디고에서 산 노트 그리고 아마존에서 산 노트 등등 이 내 노트들이다. 만년필용 노트로는 미도리를 쓰고 몰스킨에는 일기를 쓴다. 그리고 기타 등등의 노트들은 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단조로운 삶 탓에 언제 그것을 채울지는 모르겠다. 노트북에 쓰고 전자노트에 이것저것을 쓰다 보니 아날로그 노트는 점점 손이 닿지는 않지만 종이 위에 스이는 글씨를 좋아해 더 이상 사지 않아도 스는 일은 포기 못할 것 같다. 만년필용 잉크를 모아둔 것을 이사 오면서 잃어버려 큰맘 먹고 비싼 애들 둘을 샀고 기다리는 중이다. 카트리지사용이 편하지만 잉크를 채워 놓는 기쁨도 제법인 탓에 포기는 못할 것 같다.
요즘은 수성펜 쓰는 일에도 빠졌다. 유니원의 수성펜류를 리필까지 잔뜩 쟁여 놓고 스고 있단다. 내 문구집착을 이해 못 하는 어머니에게 혼도 여러 번 났지만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노트를 집어 들고 펜을 골라 쓰는 맛을 이해 못 하시니 어쩌랴. 노트 한 권을 다 쓰는데 시간이 제법 걸린다. 책을 읽다 발견한 문구 오늘 먹은 것 기분 기분 나쁜 일들 기분 좋은 일들 정말 끄적여 볼 것은 많다. 지금 또 새 펜에 눈이 돌아 살까 말까 이러고 있다. 예전 중고나라에서 만년필 입양할 때 판매자가 자신도 여기서 벗어나려 노력 중이니 너무 빠지지 말라 그랬다. 아 정말 적당히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