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선택의 한 예
우리 집은 사연이 참 많다. 구구절절한 사연 없는 집이 어디 있을까 만은 특히 더 많다. 어머니 표현으로 친척이든 뭐든 모이면 속된 말로 칼부림이 나는 집이었다나. 아버지가 어머니와 결혼할 무렵 처가가 될 집의 분위기를 보고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다할 테니 어머니의 집처럼 만들어 달라고 했단다 그렇다고 내 외가가 무슨 부유한 집안이거나 한 것은 아니다. 아무튼 아버지와 결혼한 나의 어머니는 힘든 일을 많이 겪으셨다.
가난하기 그지없는 집에 군식구는 많았단다. 아버지의 먼 친척 누이가 그중 하나였다. 친 아버지가 월북한 그 누이는 어머니 그러니까 할아버지의 누이가 재혼하면서 맡겨진 거라고 그랬다. 편의상 고모라 부르겠다.
가난한 살림에 입하나 더해졌기에 아무래도 눈치가 보였을 거다.
가족을 제대로 가지고 싶었던 그 고모는 중학교만 나온 후 취직했다. 학비를 대준 것만으로도 사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큰일을 한 거라고 생각한다. 고모가 무슨 회사에 다녔는지는 모른다. 거기서 어떤 사람을 만났고 사랑에 빠졌단다. 다정하게 대해주는 이에 대한 면역이 없어서였나 아무튼 고모는 결국 선을 넘었다. 그리고 그 결과 아이가 생겼다.. 그 남자는 아이를 가진 고모를 버렸단다.
아버지가 나서서 알아보니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아내도 있는 사람이었단다. 남자의 아내는 간통죄로 고모를 감방에 보낸다고 펄펄 뛰었다나. 집에선 중절을 권했지만 고모는 고집스레 아이를 낳았다. 아이의 생부에게 넘겨주자는 말도 거절했단다. 입양을 보내자는 것도 거절하고는 자신이 키울 거라고 고집을 피웠단다. 아버지는 한 단계 건넌 사촌 누이라서인지 여동생들에게 처럼 강경하게 나서지 못했단다.
지금도 힘이 든 미혼모의 삶이 50년 전엔 어땠겠나. 고모는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한 것이다. 가족을 남겨두고 월북을 해서 남한에 남겨진 가족을 곤경에 처하게 한 고모의 친부처럼 고모는 감정적으로 행동한 것이다. 아이의 장래 따위는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 아이는 고모의 새아버지 호적에 넣어져 자랐다. 고모는 아이에게 살갑게 굴지 못했다. 일탈의 증거인 아이를 가능한 한 안 보려고 했단다.
나는 어릴 적 그 아이를 삼촌(?)으로 불렀다. 돈을 벌어 아이랑 살 거라고 극성스레 일하던 고모는 새로 들어간 일터에서 또 남자를 만났단다. 동생으로 호적에 둔 아이를 위해 양육비를 주겠다고 고모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약속하고 이번에는 결혼을 했다.
남편은 재물운이 있었는지 돈을 벌었다. 많이 벌었다. 문제는 고모의 친정어머니가 그다지 좋은 여자가 아니라는데 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양육비 차원이 아니라 친정의 모든 생활비를 고모가 대야 했다. 남편 몰래 친정에 돈을 대는 게 그리 쉬웠겠나. 고모의 친정어머니는 아이를 가지고 끊임없이 협박을 했단다
고모는 결혼해서 일남 일녀를 두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남편이 친정에 건네지는 적지 않은 돈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고모는 자신이 쓸 돈을 극도로 줄이고 생활비를 아껴 비자금을 만들었는데 오랜 시간 안 들킨 게 신기할 정도였다. 남편은 고모가 쥐고 있던 통장을 회수하고 생활비를 지급했단다. 경제권을 빼앗기 고도 한동안 그냥 지낼 수는 있었단다. 내가 대학원 다닐 무렵 친정어머니의 돈 요구를 견디다 못한 고모는 자폭하고 말았다.. 혼전에 낳은 아이의 정체를 남편에게 밝혔다. 끊임없이 친정에 돈을 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말했단다.
남편은 며칠을 나갔다 들어오더니 자식들이 결혼하면 이혼하자고 했단다. 그리고 남편은 집을 나가고 다른 살림을 차렸단다. 고모는 아들과 딸이 결혼할 때까지 허울뿐인 아냐 자리를 지켰다. 고모의 남편이던 남자는 생활비를 주는 것 외엔 고모와 일체의 접촉을 끊었단다.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대학에 보내고 모든 과정을 고모는 벌 받듯 남편 없이 주어지는 돈을 가지고 해냈단다. 자식을 키우는 일이 없었으면 그 돈도 끊어졌을 거다. 바보 같은 고모는 변호사를 찾아가 의논할 생각도 못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사촌 여동생을 위해 고모의 남편을 만났지만 독한 말만 듣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단다.
마지막으로 아들이 결혼을 하고 얼마 후 고모는 거짓말처럼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사실 그 고모랑은 이야기를 제대로 나눠 본 적 없다. 고모의 비밀도 고모의 임종 무렵 알게 된 것이다. 나랑 나이차이가 스무 해 정도 되는 데다가 내가 초등학생 때 집을 떠났고 이따금 명절에 얼굴 본 게 전부니 뭐. 고모는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무렵도 오지 못했었다. 어린 시조카를 길러준 외숙모 장례에도 오지 않는다고들 욕했지만 남편에게 털어놓고 벼랑 끝의 삶을 사는데 친정 외숙모 장례에 가겠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단다. 부조금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빈손으로 올 수 없었다나. 남편은 우리 집을 사기꾼에 상종 못할 집이라고 몰아댔단다. 우리 집에선 아이에 대해 밝히고 혼인하든 말든 하랬는데... 혼전에 벌어진 일을 제외하고 고모는 흠잡을 데 없는 아내의 역할을 했다. 그 남자가 화가 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십 년 넘게 가정을 잘 꾸려온 아내에게 죄책감으로 더 열심히 산 고모에게 꼭 그렇게 잔인하게 굴어야 했을까?
건너 들은 소식으로 남편은 그동안 동거하던 여자와 고모의 사후 재혼 했단다. 이혼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고모가 죽었으니 모양 좋게 재혼한 거지. 고모의 아이들도 엄마에게 냉정했단다.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를 알고 나서부터 란다. 고모네 아이들과 남편은 서울의 오래된 교회에 다녔다. 교회에선 금슬 좋은 장로 권사 부부였단다. 아들은 지금은 목사가 되었고 말이다. 나도 그리스도인이지만 그 사람들은 고개를 젓게 만든다. 예수는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돌로 치려는 이들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했다. 그 사람들은 어머니와 아내보다 더 선하게 착하게 살았을까?
고모의 임종 며칠 전 우리 식구는 잠깐 얼굴을 봤었다. 오랜 시간 얼굴을 못 본 그 여인은 고운 태는 하나도 없는 마른 장작 같았다. 선택을 잘못하고 냉정하지 못했던 그놈의 사랑이 뭔지 모르나 사랑에 휩쓸렸던 여자는 죽는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고모가 살던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 며칠 전 우연히 그 근처에 갈 일이 있었다. 그 식구들이 여전히 거기 사는지 어쩐 지는 모르나 그 아파트를 보며 바보 같던 여자 생각이 났다.
아 고모할머니 그러니까 고모의 엄마는 고모가 죽고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났다. 그 할머니도 모성이란 걸 학습하지 못한 여자여서 어떤 면에선 가엾다는 생각도 든다. 자신의 딸을 벼랑 끝으로 몰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 알바 아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