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상한가?
솔직히 법학을 전공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애초에 유학을 준비하던 무렵 가려던 곳은 캘리포니아주의 한 영화학교였다. 고등학교 때 연극 영화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야기하니 내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줄 알았는지 담임 선생님이나 부모님은 나를 한심하게 보셨다. 상처 입었다. 내가 배우 할 얼굴 아님은 나도 안다. 가출을 하고 돌아온 내게 엄마는 여기서 일 년 학교를 다녀보고 그래도 그게 하고 싶으면 준비해서 유학 가라 보내주겠다. 이러셨다. 말씀대로 시험을 치렀고 1 지망이 아닌 2 지망으로 법학과에 갔다. 수학을 공부할 필요 없는 과를 선택해야 했으니 선택여지가 없었다.
1학년 내내 토플 시험공부를 하고 유학 갈 학교를 선정하고 등록금 납입만 남을 때 사랑하는 동생 놈이 사고를 쳤다. 9시 뉴스에 실릴만한 큰 일이었다. 하나뿐인 손자 운운 하는 할머니는 동생을 유학 보내라 주장했고 나는 단식투쟁하는 할머니를 못 이겼다. 동생은 그렇게 미국물을 먹었다. 안 되는 일에 대한 미련을 빨리 버리는 편인 나는 학교에 말뚝을 박기로 하고 공부에 신경을 썼다. 우리 집은 둘을 유학 못 보낸다. 동생이 뭐라도 끝내기 전엔 나에게 기회는 없을게 분명했다. 동생은 나와 연년생이다.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공부를 했다. 학교에 남고 싶었다. 그러나 독일어와 일본어가 쥐약인 내가 전공공부를 하는 일은 너무 힘들었다. 불어는 좀 하지만 소용 없었다.ㅠㅠ 일본어는 한자만 읽는 정도로 그럭저럭 책을 읽었지만 독일어는 불가능했다. 아무튼 악착같이 공부를 했다. 교수님들 간의 싸움이 커질 무렵 나는 박사 과정 공부를 포기했다. 수험공부는 싫어도 법공부는 재미있었는데...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은 계속 남았지만 그리로 갈 수 있는 길은 계속 열리지 않았다. 이제 강산이 세 번 넘게 아니 네 번인가 바뀌어간다. 내가 법학공부를 시작한 지... 다시 무얼 하기는 이제 불가능하지만 책 읽기는 할 수 있기에 책을 읽으며 독학을 했다. 그만큼 법은 재미있었다. 그러나 이젠 정말 손을 놔야 하나보다.
그런데 너무 많은 게 바뀌어 가는 법 현실을 보며 한때 법서로 공부하던 사람은 마음이 아프다.
무엇이 상식인지 판단 기준마저 흔들리는 그런 게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