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내 블로그 글을 보다가

세월이 정말 빨리 흐른다.

by 아이린

어린아이가 별로 없는 동네에 산다. 아니 어느 동네라고 어린아이들이 많겠냐만은
요즘은 아이들이 정말 없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아주 어릴 때 이사 와서 지금까지 살았다.


이 동네 아이들은 취학 전에는 할머니나 집안 여자 어른들이 키웠다. 조금 커서 학교에 가면 거기서 있는 시간엔 학교 선생님들이 키웠다.. 방과 후엔 숙제만 해놓고 골목을 싸돌아 다니거나, 형편이나은 집 애들은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았다. 그렇지 않은 애들은 얼굴이 새까매질 때까지 골목에서 놀았다.


내가 자라던 무렵에는 놀이 터란 게 없었다. 놀이터가 뭔지도 몰랐다. 그냥 동네 전체가 놀이터였다.. 조막만 한 마당이 있는 집에선 계집애들끼리 소꿉놀이를 했고 사내애들은 공놀이를 했다. 그것도 없으면 텔레비전에 나오던 초능력인간흉내를 내며 골목을 누볐다. 해가 지고 밥때가 되어야만 흩어져 집으로 가던 그 패턴 말이다. 우리 집 유리창은 가끔 야구한다는 애들이 던진 공에 깨졌다. 그럴 때면 눈물범벅이 된 아이가 엄마랑 와서 배상을 해주고 가곤 했다. 때로는 담 넘어온 공을 주어 도로 던져 주어야 하는 일도 있었다.


다른 동네 아이들도 이러고 놀았을 거다. 나는 깍두기로 끼워 주는 경우가 있을 땐 함께 놀았지만 방구석에 처박혀 빌려온 만화책을 읽었다. 어머니가 사준 위인전기 세계 문학전집 등을 읽기도 하고 고모가 숨겨둔 이해 못 할 여성잡지를 보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 언덕하나 넘어 올라가 있는 공터에 미끄럼틀과 그네가 고작인 놀이터가 생겼다.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집 앞에서 놀아도 그만인데 거기까지 뭐 하러 올라가랴. 아파트에는 일찍부터 놀이터가 있었다지만 주택가에는 시설을 갖춘 놀이터라는 게 거의 없던 때였다. 아 일반화는 곤란하지 다른 동네 사정은 모르니.. 어느 틈엔가 집 앞에서 그리고 마당에서 노는 애들이 사라졌고 골목을 달리는 애들 발소리도 사라졌다. 그리고 자동차들이 빽빽하게 주차되어 버린 골목길은 그냥 길이 되었다

언덕 넘어가면 있던 놀이터에 산보 삼아 돌아다닌 게 내가 대학 다닐 무렵이었던 것 같다. 어느 틈에 많이 줄어 볼 수 없던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그곳에서 볼 수 있었다. 학원에 갈 일이 없거나 집안에 놀거리가 없는 아이들 아니면 시끄럽다고 집에서 쫓겨난 아이나 엄마아버지의 늦은 귀가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그곳에서 놀았다. 그네도 미끄럼틀도 낡았지만 잘들 놀았다. 그 앞을 지날 때면 삼삼오오 모여 노는 아이들을 언제나 볼 수 있었다. 해가지기 전까지 아이들 노는 소리로 시끌벅적하던 그곳은 아이들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언제부턴가 밝을 때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시간 소일을 하는 곳, 어두워지면 불량스러운 아이들이 모여 있는 우범지역으로 전락해 버렸다.


아이들이 줄기도 했지만, 안전 등의 문제로 아이들은 바깥에서 놀지 않는단다. 아이들이 노는 방식이 달라졌단다. 어느 날 그 놀이터가 단장에 들어갔다. 그 놀이터를 새 단장하면 아이들이 늘어나리라 생각한 걸까 그 놀이터가 도시 재생 사업으로 리모델링을 했단다. 놀이기구 새 거로 들여다 놓고 우레탄인지 뭔지 푹신한 바닥도 깔고 말이다. 새 놀이터가 개장할 때 가 봤다. 워낙 좁은 터라 크게 바뀐 데는 없었다. 그네와 미끄럼틀 시소 이 정도가 새것으로 바뀌었고 아이들이 놀던 모래밭이 없어졌다. 아 벤치가 몇 개 더 늘었구나.

놀이터 뒷집에 사시는 어른에게 물었다.
" 아이들이 좋아하겠네요. 많이 놀러들 오면 집이 시끄럽죠? '
" 없어.. 요즘은 나와 노는 애들이"

이제 그곳이 주 이용객은 어린이가 아니라 실직한 아저씨
시간 보내는 노인 그리고 부랑자 그리고 유기 동물이다
물론 깜깜해지면 위험한 건 여전하고..

현명한 지출은 아닌 것 같다. 돈이 많다면 이런 공간 하나쯤 나쁘지 않겠지만
한정된 돈으로 꼭 놀이터를 리모델링해야 했나?

차라리 요즘 어느 지자체가 하듯 운동기구라도 들여놓지.

큰돈을 들여(진짜인지 모르나 2억을 들였대지) 새 단장한 놀이터
어린이가 오지 않는 놀이터..
벤치가 몇 개 있고 놀이기구가 장식처럼 놓인 신개념 (?) 공원이 우리 동네에 있다.
정말 재미있다. 재생사업은 어린이 없는 어린이 놀이터를 만들어줬다.


블로그글을 그대로 옮기면서 조금 고쳤다. 그 동네를 3년 전 완전히 떠났다. 글에는 내가 살던 동네를 짐작할 부분이 있어서 그건 지웠다. 아직 단골 안경점과 의사 선생님 때문에 그 동네에 간다. 놀이터에는 못 가봤지만 수다스러운 안경점 선생님 말로는 여전히 어린아이들이 거의 없는 동네란다. 선생님도 슬슬 일을 접으실 거라나. 선생님은 60년 경력의 안경사다. 사는 동네에서 안경점을 아직 못 만났는데.ㅠㅠ 병원 선생님 역시 연세 탓에 병원 접으실 날 멀지 않은 듯하고 그분들이 없으면 이 동네에 그나마 올일 없겠다. 어린 시절 청년시절 보내고 중년이 되어 떠난 예전의 모습은 많이 잃어버렸지만 마음의 고향 비슷한 곳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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