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아픈 다툼

가족이란 게 무얼까

by 아이린

아버지는 남자형제 셋을 잃고 여동생 둘만 남아 본의 아니게 맏이가 되었다. 남자 형제중 하나는 형님이었고 나머지 둘도 여동생 둘보다는 나이가 많았단다. 고모중 한 사람은 미국에 나머지는 서울에 산다. 막내 고모와 나의 사이는 과거에는 아주 좋았다. 막내고모는 아버지 어머니가 키워 시집을 보냈다. 고모는 공부를 못해 대학은 못 가고 고등학교만 졸업했다. 할머니는 막내를 대학에 못 본 낸 미련을 살아계실 때 자주 아버지 어머니 앞에서 이야기하셨다. 공부를 못한 걸 어쩌란 건지 재수라도 시켰어야 했나?


오빠 부부가 여동생에게 어디까지 해야 하는 건지 ... 고모는 직장을 가진 적도 없다. 미국 고모는 국비지원 되는 국립 간호대를 나와 간호사로 근무하다 미국 취업 이민을 갔다. 큰고모에게 서울대 들어가면 학비는 대주겠다 했지만 큰고모는 이대 정도는 무리 없어도 서울대는 힘들었기에 본인이 수소문해 학비가 안 드는 학교를 들어갔단다. 막내 고모는 백수로 거의 10년 집에 있다가 시집을 갔다. 시집을 가는 비용도 우리 부모님이 댔다.


재미있는 건 맏이라도 우리 아버지는 조부모님께 도움 하나도 못 받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분이다. 맏이가 할 의무라고 주어진 여동생 돌보기를 외면해도 고모는 할 말 없었을 거다. 고모는 요란하게 한 결혼을 실패했고 거기서 모든 문제가 생겼다.


기나긴 집안의 다툼은 말 않겠다. 일단 그 다툼에서 나는 고모 편을 들지 않았다. 고모는 나에게 배신감을 느꼈었던것 같다. 과거 고모와 나는 사이가 좋았다. 나이가 조금 많은 언니 같은 존재였다. 나는 머리는 조금 나빠도 착한 고모가 좋았다. 철저하게 중간에 서서 입을 다문 이유는 그래서 였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나듯 싸움은 한사람의 잘못만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게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고모는 선을 넘었다. 어린 조카들 (당시에 세 살과 아홉 살)이 보는 앞에서 아이들의 아버지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나는 고소를 하겠다고 경찰을 불러야 한다고 했지만 어머니 아버지가 만류했다. 그래도 가족이라나.. 어린 조카들의 충격은 말도 못 했다.


어머니는 기억도 못하는 일 (물론 나도 기억 못 한다)로 어머니를 사기죄로 고소한 우리 고모. 입이 안 다물어졌다. 물론 고소한 내용도 사실이 아니었다. 일기광인 어머니의 과거 일기를 다 찾아 복사했다. 그리고 경찰서에 조사받으러 가서 제출한 후 사실관계를 내가 아는 범위에서 진술했다. 무혐의 였든가 아무튼 경찰 선에서 끝났다. 경찰이 봐도 가족간의 다툼 같아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았나보다. 나는 당사자가 아니니 직접 고소할수도 법률대리자일수도 없어서 그냥 그걸로 끝냈다


무고죄로 고소하고 싶은걸 그냥 뒀더니 고모는 내 직장에 찾아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내 뺨을 때렸다. 부끄러운 건 둘째로 하고 화가 너무 나서 기가 막혔다. CCTV화면을 녹화해 경찰서에 찾아갔다. 그리고 폭행과 업무방해로 고소했다.


어머니 아버지는 내게 놀랐는지 그러지 말지 하는 말씀만 반복하셨고 미국의 큰고모는 불쌍한 여동생을 위해 변호를 했다. 불쌍한 고모를 네가 돌봐야 하지 않느냐.. 고모는 나보다 11살 많다. 누가 누구를 돌보지? 아무튼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 일은 50만 원 벌금만 내는 선에서 끝났다. 항변하려고 경찰서에 가려니 부모님이 말린다. 아무튼 이후로 고모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를 비롯한 가족들을 괴롭혔다. 별로 좋지 않은 머리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한참 왕래가 없었다. 돌아가신 조부모님 묘지 관리 문제가 생겨 연락 온 고모는 자기에게 관리명의를 넘기라 그랬다. 나는 그러마 하고 묘지 관리실에 전화한 후 서류를 보냈다. 그러나 고모가 알고 있는 서류와 뭔가가 달랐나 보다. 목소리를 듣기 싫어 문자만 보냈더니 아버지 전화로 결국 나와 연결을 하는 게 아닌가. 상황을 이해 못 하는 아버지는 받기 싫대도 전화를 내게 쥐어주셨다. 쏟아지는 욕을 듣기 힘들어 책상에 놓고 잠시 숨을 돌렸다. 전화를 끊은 후 시간을 보니 30여 분간의 욕시간이다. 내가 욕받이인가. 난 욕하는 사람 싫어한다. 무례한 사람도 싫다. 맞설 자신 없어 언제나 피한다.


어머니는 이해와 용서를 말하지만 나는 그릇이 거기 도달하지 못해서일까? 자신 없다.

들을 생각을 하지 않고 쏟아내는 말을 감당하는 법 누가 내게 가르쳐줄 수 있을까?

무엇보다 궁금하다. 이런 관계의 사람과도 가족으로 묶여야 하나?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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