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적인 믿음이 답은 아니다
신앙은 의심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외가 쪽이긴 하지만 4대째 크리스천이다. 경상도 지역에 들어온 선교사를 통해 신앙을 가지게 되신 외 증조모가 며느리와 자식들을 교회로 이끌었다. 외증조모는 베를 짜서 판 돈으로 교회를 지었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여든이 넘으셨지만 유아세례를 받으신 분이다. 물론 나도 유아세례 받은 입교 신자다. 나는 충무교회 고 박종렬 목사님께 유아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아무튼 숨 쉬듯이 신앙은 내게 스며들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러면 나에겐 의심이 없었나? 물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때 성경학교에서 선악과가 문제의 근원이 될걸 알면서 에덴동산에 두신 하나님은 무슨 생각이신 거냐 하고 물어 당시 성경학교 선생님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성경 곳곳에서 드러나는 내 신념과 다른 내용에 대해 많이 불편했던 적도 많이 있다. 그럼에도 결국 레이철헬드 에반스의 말대로 성경으로 신앙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 혼란과 불신의 계곡을 힘겹게 거쳐서 지금 이 자리에 이르렀고 믿음은 더 많이 단단해졌다.
청문회에서 마태복음 6장 34절을 인용한 모의원 이야기 유튜브 자신의 채널에서 김민석 총리 지명자를 십자가에서 고난 받은 예수처럼 언급하는 모국회 의원 참 불편했다
마태복음 6장 34절 말씀은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이 구절은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현재의 문제에 집중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라는 말이다. 그게 청문회의 당사자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마치 해명할 수 없는 돈을 이 말씀을 붙들고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는 것 같아 불쾌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할 때 시기적절하게 도움을 주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정직을 요구하시는 분이다. 일상의 순간순간 심판의 자리에 서있다는 심정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건 과부가 낸 적은 돈이었다. 부유한 이들의 헌금이 아니다. 과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형제와 먼저 화목하고 예배를 드리라 하신다. 헌금도 마찬가지다. 고르반 효도를 하지 말라고 하셨듯이 갚을 돈이 있으면 갚고 도울이가 있으면 도운후 헌금을 내라 했다.
2억 헌금의 명분이 설마 십일조는 아니겠지? 십일조는 내야 하는 거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건 더 무섭다.
믿음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기독교인이라면 행동을 보여야 했는데 말로만 기독교인인 그와 그를 옹호하는 박모의원 강모의원의 이야기가 참 서글프다. 그래서 교회가 세상에서 욕먹고 핍박받음을 그들은 모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