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고 잊는다는 것

힘들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일

by 아이린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특히 누군가에 대해 감정적으로 맺힌 것이 있을 때 그것을 털어내기는 글쎄 쉽지 않다. ' 용서하고 잊는다는 것은 자신이 겪은 귀중한 경험을 창밖으로 내던져 버리는 것이다'라고 쇼펜 하우어는 말했다. 그는 냉소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들이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도 불가피하게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똑같은 행동을 하거나 거의 비슷한 행동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성경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말한 일곱 번씩 일흔 번은 무한한 수를 의미한다. 또 큰 죄 즉 빚을 탕감받고도 자신에게 그보다 적은 빚을 진 이를 용서하지 않고 옥에 넣어버린 어리석은 이의 예화도 나온다. 어릴 적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고 있으면 아니 정확하게는 나를 화나게 만든 상대에게 쏟아부을 말을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으면 늘 들던 생각이 있다. '하나님이 네 잘못을 이처럼 헤아리시면 너는 어쩔 거냐' 이 생각은 내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속으로는 비판과 욕으로 만리장성을 쌓아도 내뱉지 않았다. 거의 모든 경우에 말이다. 거의 모든 경우라 했지 언제나라고는 하지 않겠다.


나를 억울하게 또 화나게 만드는 이는 언제나 같은 문제를 내게 던져 준다. 쇼펜 하우어의 말처럼 그들과의 관계를 단절할 수도 없는 것이 또 사실이다. 내 눈의 들보를 먼저 빼고 다른 이를 책망하라지만 난 인간이다. 그럴 수 있는 인간이 얼마나 될까?


지금 용서의 문제를 내게 던진 어떤 사람이 있다.한참동안 나는 그를 보기를 거부함으로 감정의 문제를 피했다. 그는 용 서 할 수도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감정을 터트릴 수도 없는 상대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아직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기는 하지만 다 들 그렇지 않을까? 아직 나는 멀었나 보다.

더워서 힘들어 죽겠는데 연장자라는 이유로 그에게 예의를 갖추고 돌아와서 함께 먹은 음식도 얹히고 힘들어 어쩔 줄 모르겠다.


매번 예수님을 닮아가겠다고 하면서도 그러지 못하고 속을 끓이는 내가 너무 한심하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용서하고 털어야 하겠지만 왜 이리 힘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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