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얼 해야 하지?
1차 검사 2차 검사를 거쳐 병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마쳤다. 치매 진단을 위한 검사를 하는 과정이야 특별할 것은 없지만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진행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서울에서 모든 것이 매끄럽게 진행되는 그런 병원들만 경험하다가 2차 병원 거기다가 사람들로 붐비고 필요한 안내도 없는 그런 곳에서 불안해하는 노인 둘을 이끌고 검사 장소를 찾아다니는 일은 쉽지 않았다.
더 황당한 것은 검사를 위해 식사를 하지 않고 나온 아버지- 어머니도 같이 안 드셨다- 에게 오후에 검사결과가 나오니 대기했다가 듣고 가라는 말이었다. 다른 날에 방문하라는 것도 아니었다. 식사를 하셔야 한다니까 인근에서 먹으면 되지 않느냐. 나는 검사결과를 내가 듣게 해달라고 그랬다. 부모님이 이른 아침부터 여기 오시느라 고생하셨으니 집에 가서 식사하시고 쉬셔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 인근 사는 줄 알았는지 집에거서 밥먹고 다시 나오라나.. 차 타고 1시간 더 가야 집이라고 내가 쏘아붙였다. 그럼 가족 관계 증명서를 떼어 가지고 오란다. 그래야 내가 결과 들을수 있단다.
욱하는 마음 진정시키고 부모님을 택시에 태워 집에 가시도록 했다. 물어 물어 주민센터를 찾아가 가족관계 증명을 떼고는 병원에 돌아왔다. 신경이 곤두서서 정작 나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서 병원 대기실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결과야 형식적인 거고 어느 정도 짐작한 것을 확인받는 거니... 그렇지만 슬펐다. 뭔가 잘못해서 이런 질환에 걸리는 건 아님은 안다. 그래도 기억을 잃어가는 병이란 것의 부정적 느낌은 언제나 내게 두려움을 줬는데 그것이 내 아버지의 일이고 우리 가족이 맞는 현실이 될 거라니
검사 결과를 받아 들고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먼저 설명을 했다. 전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치매는 알츠하이머만 있는 줄 알았던 우리에게 뇌 혈관성 치매는 새로운 영역이었다. 어머니에게 관리만 잘하면 아버지에게 큰 문제는 안 생길 거니까 기운 내자고 말씀드렸다. 일단 어머니가 아버지를 주로 돌보실 것이기에 그리고 약 복용 식사 수발 등등을 어머니가 해야 하기에 나는 어머니에게 나도 그럴 거지만 마음 단단히 붙잡고 살자고 당부했다.
집에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것은 집안 곳곳의 술병을 버리는 일이었다. 아버지에게 선물로 들어와 아버지가 반주로 드시던 이름 있는 술들 다 꺼내서 뚜껑을 열고 개수대에 부어버렸다. 예전부터 과음은 안 해도 술을 즐기시는 게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 음주도 문제를 만든 이유 중 하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나는 가차 없었다. 집을 줄이고 이 시골까지 오면서도 가지고 온 그 술병을 다 비우면서 내 마음도 조금 시원해졌다. 그리고 천식으로 캑캑거리면서도 끊지 못해 부부 싸움의 원인이 되었던 담배 그리고 라이터도 다 수거해 버렸다. 아버지는 식구들이 뭐라 하니 숨겨두고 한두 가치 정도 피우셨었다. 싸우다 지친 어머니는 그간 묵인했었다. 나는 간접흡연 경력이 꽤 되고 1살 무렵 결핵을 앓아 기관지 폐등이 아주 안 좋다. 그래서 흡연을 아주 혐오했지만 아버지와 동생을 어떻게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회가 왔으니 아버지의 흡연은 완전히 중단시키리라 마음먹고 보란 듯이 다 거두어 아버지 보는데서 쓰레기봉투에 집어넣었다.
검사 결과를 정식으로 받아 들고 술과 담배를 다 버리는 이벤트를 했지만 이제부터 길고 지루하고 답이 없는 아버지의 투병을 함께해야 할 어머니와 내 처지를 생각하니 그날은 유독 잠이 오지 않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