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아버지와는 사실 잘 안 맞는다. 어머니는 둘이 닮은 데가 많아서란다.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사이가 그래도 조금 나아진 것은 서른살 무렵 집에서 나가 살면서부터다. 매일 보면서 속이 부글거릴 일 없으니 그냥 그냥 남의 집 어른 보듯이 예의 바르게 대하며 살 수 있었다. 내 나이에 아빠 아빠 이러면 징그럽겠지만 나는 중학생 때부터 언제나 아버지라고 불렀다. 어머니는 엄마 어머니 그때그때 다르나 아버지는 내게 늘 아버지였을 뿐이다.
정서적 거리감이 생긴 이유는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정서적 거리감과 함께 참을성도 사라졌다. 자수성가를 한 사람으로 많은 제자와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것은 알겠지만 나는 어릴 적 아버지가 아닌 아빠를 원했다. 그렇다고 무슨 도덕적 문제가 있는 분이란 건 아니다. 내가 무척 싫어하는 그래서 고치려 하지만 잘 안 되는 성격의 대부분이 아버지를 닮은 것이니까. 동생과 아버지는 동생이 가정을 꾸리고 아버지에게 상당한 물질적 피해를 입힌 후 극도로 나빠졌다. 그 부자의 공통점은 서로가 잘못한 부분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 할까?
치매라는 병이 사람의 성격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는 잘 모르겠다. 책을 읽어도 잘 모르겠다. 평상시와 다른 성격이 나온다나 행동도 그렇고... 치매 진단 무렵 의사가 물어본 것이 아버지에겐 새로울 게 없는 부분이었다. 예민하고 까다롭고 별거 아닌 일에 과도하게 화를 내는 것 미각의 변화는 원래부터 맛을 구별 못하는 사람이었으니 이상할 게 없었다. 진단 전에도 일 년 정도 지날 때까지도 큰 변화를 못 느꼈다.
그런데 진단 후 일 년쯤 시간이 지나니 이제는 치매가 이렇게 사람을 바꾸는구나 싶게 생각되는 부분이 생겼다. 다른 치매 환자들도 다 이러는지는 모르겠다. 사람을 여러 조각의 퍼즐로 설명하면 이해하려나? 이런저런 조각이 사람의 성격 전체를 구성하는데 거기서 조그만 조각 하나씩이 사라진 것 말이다. 그 사라진 조각은 완전한 퍼즐을 만드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현재 아버지에게는 사람의 말을 들으려는 생각이 사라져 버렸다. 원래 다른 이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자기 생각대로 하는 분이지만 이제는 그 듣는 과정이 사라졌다. 아니 듣고 기억을 못 하시는 건지 뭔지는 모르겠다. 일단 거슬린다 싶은 게 생기면 전후 좌우 이야기를 들어보는 일을 아예 안 하신다. 그런데 내가 미치겠는 건 쏟아내듯 당신 이야기를 하고는 지나갔나 싶으면 다시 시작하는 거다.
아버지의 반복되는 옛날이야기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예전이야 당신의 젊을 때 이야기나 뭐 그런 좋은 시절 일들이었다. 이제는 토씨 하나까지 우리 가족이라면 다 외우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그러나 이젠 좋았던 시절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화난 것을 반복한다. 거기에 왜 그런 상황이 되었는지는 다 사라지고 화가 난 감정 만족스럽지 않은 감정만 반복하신다. 어머니에겐 그러다 마시지만 나는 눈에 띄면 계속 쏟아내신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딸이라는 것이 잠재적으로 작용한 건가? 오늘도 결국 아버지의 뭔가를 자극한 나는 쏟아지는 분노를 피하지 못하고 다 뒤집어썼다. 욱하는 심정에 대들려는 내손을 어머니가 잡으시고 참으라 신다. 참아야지 어쩌겠는가. 좁고 더운 방 안에서 꼬마 선풍기 하나 틀고 좋아하는 재즈의 볼륨을 높이고 피신 중이다. 앞으로 또 무슨 조각이 빠져나가려나 솔직히 좀 암담하다.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아버지에게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다. 약을 복용하고는 있지만 결국은 망가진다. 피해 있는 동생과 달리 나는 나이 드신 부모 곁에 머물러야 한다. 맏이기도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다른 상황도 나를 힘들게 만다. 그러나 어쩌겠나 치매 환자의 가족이 되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기로 한 이상 말이다.
어머니는 현재 어머니의 역할을 잘하고 계시니 나는 나의 일을 하며 그대로 살아내야 한다. 참을성 있는 딸이 되어 무슨 소리를 듣든지 견디자. 그리고 최대한 자극받으실 일을 만들지 말자.
그런데 솔직히 아버지의 발화점이 어딘지 모르겠다. 그래서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