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서글프네
안 좋아하는 음식은 있어도 못 먹는 음식은 없었다. 피부에 뭔가가 나서 가렵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모기 물리는 일 아니면 내 피부만은 늘 건강했다. 그런데 인생의 반환점을 돈지 몇 년이 지나 희한한 일이 생겼다.
음식이 없어서 못 먹는 일이 있어도 보고도 못 먹는 일이 없던 나에게 문제가 생겼다. 음식 때문에 알레르기로 호흡곤란까지 일으키는 사람 그리고 빨갛게 피부 발진이 이는 사람 있다더라 하는 이야기는 들었다.직접 본 일은 없다만 말이다.그러다 외국 여행에서 우유를 먹을 수 없어서 오렌지 주스를 시리얼에 부어 마시는 독일 여자아이를 만난 적 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힘들겠다 생각은 했다. 우유가 들어가는 모든 걸 먹지 못한다나.. 케이크도 아이스크림도 다 못 먹잖아 초콜릿도 물론 나중에 비건을 위한 제품이 있는 건 알았지만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엔 유당 불내증을 위한 대체 식품도 없던 시기였으니 그냥 생각하기에도 유제품 못 먹는 일은 참 큰일이겠구나 싶었다.
나는 껍질을 벗기면 물이 질질 흐르는 복숭아를 좋아했다. 다행히 우리 집에서 왕자님 대우받는 동생은 천도복숭아를 좋아해서 복숭아 먹겠다고 싸울 일은 없었다. 우리 집에서는 나만 그 복숭아 좋아해서 집에 선물로 들어오는 건 내 차지였다. 그런 내가 이젠 그 복숭아를 먹지도 쳐다보지도 못한다. 쳐다만 봐도 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하고 먹으면 빨갛게 뭐가 돋아난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갑자기 복숭아는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과일이 되었다. 혹시 몰라 복숭아 향 나는 모든 것을 다 피하는 중이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햇볕 알레르기가 생겼다. 반팔을 입는 계절이니 팔은 그대로 태양 볕에 노출된다. 더운데 긴팔 어떻게 입어 이랬는데 햇빛에 노출된 부위가 달아오르고 가렵기 시작한 게 복숭아하고 멀어진 무렵부터다. 긴 팔을 입었는데 이번엔 손등이 문제가 생겼다. 찾아보니 손등까지 덮는 팔토시가 있었다. 그걸 사서 팔에 기우고 외출한 게 벌써 몇 해다. 더워 죽겠다.
어머니 말씀으론 면역 저하가 원인이란다. 그런가? 아무튼 아무 생각 없이 어제도 그냥 맨 피부로 나갔다와 일어난 알레르기 발작으로 긁다 약 먹고 알로에겔 팔에 떡 칠했다. 머리가 커서 모자를 쓰지도 못하니 양산 그것도 암막 양산이란 걸 사서 쓰고 팔에는 토시 끼고 눈 보호 하러 선글라스 끼고 늙어가는 중이라서 이러나... 별거 별거 다하고 있다 정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