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였던 청춘, 그리고 지금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by 보통의삶

지난 8주 동안 내 주말 밤을 가득 채웠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끝이 났다. 한 회 한 회 지나가는 게 아까울 만큼 푹 빠져 봤는데..


그러나 마지막 회를 보고 난 나는 화가 났다. 단순히 주인공들이 헤어져서 또는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밤잠을 설칠 정도로 화가 났고 알 수 없는 우울감이 덮쳐왔다. 꿈을 먹고사는 청춘도 아닌데, 무엇이 서른일곱의 나를 이토록 화나고 우울하게 만들었을까.


하루를 꼬박 곰곰이 생각하고 마지막 회를 두어 번 다시 본 끝에야 나는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반짝였던 청춘은 이미 지나가 버렸고, 현재의 나는 더 이상 반짝이지도 꿈을 꾸지도 않는다는 현실에 대한 자각이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누군가에게 뺨을 맞은 듯 아팠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힘든 상황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단단한 마음을 키워가는 희도와 이진이 참 예뻤다. 그 안에서 유쾌함을 잃지 않으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모습은 더더욱 두 주인공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성장해가는 두 주인공의 현재는 얼마나 멋질까 상상하게 만들었다. 나도 오래오래 옆에서 지켜보고 싶었다.


그러나 드라마는 청춘을 눈부시도록 반짝이게 표현한데 반해, 현재에게는 서운할 만큼 불친절했다.


펜싱이 너무 재밌다며 나의 펜싱을 보여준다던 희도는 이제 더 이상 경쟁이 재미없다며 은퇴를 택했고, 은퇴한 뒤에는 가구 디자이너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겼으나 그보다는 민채 엄마의 역할에 집중한 모습이었다. 나도 아이를 키우며 직장에 다니는 입장에서 엄마로서의 희도가 싫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영원한 건 없다고 말하며 딸에게 발레 그만둘 거냐며 잔소리하는 희도의 모습에서 유쾌하고 열정적인 어린 희도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밤낮없이 노력하여 하나남은 국가대표 자리를 차지하던 열여덟의 희도는 보는 나조차 설레게 했지만, 40대의 희도는 더 이상 반짝이지 않았고 닮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 또한 빛이 바래버린, 그저 그런 어른이 된 건 아닐까 두렵게 만들었다.


무모하리만큼 용감하고 반짝였던 청춘이 끝나더라도 그 시간 속에서 성장하여 더욱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진이 덕분에 사랑을 배웠다던 희도는 그 사랑을 나누는 어른으로 성장했을까. 선수 생활이 끝났더라도 사랑하던 펜싱을 놓지 않고 양찬미 코치보다 더 멋진 어른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을까. 어렵게 찾은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진이는 그 꿈을 이룬 뒤에는 조금은 여유를 찾았을까. 희도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행복을 찾는 사랑이 많던 아이로 돌아왔을까.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아름다운 청춘의 기록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름다웠던 청춘을 기록으로만 남기기보다 그 시간들이 현재의 그들에게 미친 영향을 조금 더 친절하게 풀어주었다면, 두 주인공이 헤어졌더라도 서로에게 배운 것들을 통해 더 성숙한 어른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그 결말이 더욱 마음에 남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드라마는 마지막 회 내레이션을 통해 그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면 속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지나가버린 나의 청춘도 마찬가지이다. 30대 후반의 나는 더 이상 친구들과 차를 빌려 새벽 바다를 보러 가지 않고, 홍합탕에 소주만 시켜놓고 친구들과 밤새도록 행복할 만한 여유를 가지기 어렵다. 그리고, 20대에 만나 3년 반의 롱디를 포함해 5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한 남편과 나는 직장일과 아이 키우는데 바빠 서로를 위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괜찮다. 20대를 함께 보낸 친구들 중 많은 이들과는 간간히 SNS와 카톡으로 근황을 확인하고 안부를 묻는 정도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더 멋진 어른으로 크고 있는 걸 알고 있기에 괜찮다. 친구들보다 직장 동료들과 보내는 시간들이 더 많지만, 그 안에서도 소중한 인연들이 생기고 추억들이 쌓이기에 괜찮다. 남편과 이야기 나누는 미래에는 현실감이 가득하지만, 막연하던 20대의 꿈을 함께 현실로 이루어가며 수정된 미래이기에 그 안에는 뿌듯함도 녹아있다. 내 청춘은 지나갔으나, 나는 지금의 내 모습도 여전히 괜찮다.


그리고 드라마는 청춘의 끝에서 끝이 났지만, 그 시간들을 지난 희도와 이진이의 현재도 여전히 반짝일 거라 믿어본다.


(덧) 희도야 이진아, 인생에 기회가 한 번뿐인 건 아니야. 삶은 이어지고 그 속에서 잘못된 선택들을 되돌릴 기회는 남아 있어. 그러니까, 다시 잡아... 늙은이는 여전히 민채 아빠 김백이진으로 알고 있을게


이미지 출처: 구글 "스물다섯 스물하나"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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