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잘 사는 것 같을 땐, 내 이불 속이 최고다 생각하기
– 괜찮게 늙는 중입니다 ⑭
친구가 새 차를 뽑았다고 했다.
“전기차야. 조용하고 연비도 좋고, 진짜 괜찮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 멋지다. 와아~”
그리고 집에 와서 내 차를 탔는데,
엔진 소리가 유난히 크다.
이 소리, 어쩌면 나름의 개성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누군가 좋은 소식을 전하면 나도 기뻐하지만,
어느 틈엔가 ‘나는 요즘 뭐 하고 있지?’ 생각이 스며든다.
비교는 꼭 내가 일부러 하려는 게 아닌데,
어느 틈엔가 스며들듯 시작된다.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는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누군가 그것을 원했기 때문에, 나도 원하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비교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따라가며 내 욕망이 만들어지는 구조일지도 모른다.
내가 뭘 원했는지조차 헷갈릴 때가 있다.
‘내가 나로 사는 건가, 남이 바라는 나로 사는 건가’라는 질문이 고개를 든다.
또 다른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타인의 시선을 통해 나 자신을 의식하게 된다.”
타인의 시선이 나를 완성시키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시선은 때로 나를 가장 쉽게 무너뜨리는 도구가 된다.
그 시선이 없었다면 그냥 ‘괜찮은 하루’였을 일이,
누군가와 비교되며 ‘초라한 하루’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꼭 기억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남의 삶은 멋진 식당의 브런치처럼 멋져 보여도,
내 삶엔 삼각김밥 같은 소소한 행복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들 잘 사는 것 같을 때일수록
내 이불 속이 최고다라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누워서 폰 화면 밝기를 낮추고,
새콤한 젤리 하나 입에 넣으며
세상과 거리를 살짝 두고 나만의 속도로 숨 고르기.
이불 안에서만큼은 남의 시선 말고
내 마음의 온기로 따뜻해지도록.
– SNS보다 내 일기장을 먼저 열어보기
– 타인의 좋은 소식에 박수치되 나와 비교하진 않기
누구나 비교하며 산다지만,
비교하지 않으려는 연습도 분명 가능하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