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의 날 축제(2)

by 뭉지

‘대체 누구에게 꽃을 주러 가길래 저렇게 열심히 계단을 오르시는 걸까?’

죽음이 가까워지는 나이에 누군가의 묘지를 힘겹게 찾아가는 모습이 한 편의 영화같기도 했다. 할아버지를 따라가면 장미꽃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조용히 따라갔다.


마침내 묘지가 있는 정상에 다다랐다. 잠시 앉아서 쉴 법도 했지만 할아버지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멈추지 않았다. 절뚝거리며 미로 같은 묘지를 익숙한 듯이 걸더니 어느 한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내 인부를 불러 무어라 말했고, 인부는 사다리를 가져왔다. 돌로 지어진 무덤은 마치 오래된 사물함처럼 층층이 쌓여 있었다. 할아버지가 찾아 온 대상은 맨 꼭대기에서 한 칸 아래 에 있었다. 인부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할아버지 대신 꽃을 놓아드렸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번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순간을 맞이했다. 그분의 묘에는 이미 다른 꽃들이 많았다. 할아버지의 화려한 장미꽃이 무색할 만큼 종류도 색도 다양했다. 그는 오늘만이 아니라, 수많은 날들도 이곳으로 찾아왔던 걸까?

그는 이내 모자를 벗고 땀에 푹 젖은 머리를 숙여 묵념을 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한참 동안이나 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그 순간만큼은 영원히 멈춘 느낌이었다. 할아버지는 이내 자신의 눈가를 손으로 훔치셨다. 직감적으로 할아버지가 찾아 온 대상은 아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기만 해도 심장이 아릿하면서도 코 끝이 찡해져 슬그머니 발걸음을 옮겼다.

공동묘지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할아버지에게만 고정돼 있던 시야가 넓어지자 미처 못 봤던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많은 메리골드와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해골 장식, 그리고 나비 장식품으로 꾸며진 무덤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화려함이 가득한 가득한 형태였다. 캠핑 의자를 펼쳐놓고 무덤 바로 옆에서 피크닉을 하는 가족들도 있었다. 마치 떠나간 이가 바로 옆에서 자신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것처럼 행복한 표정이었다. 어떤 사람은 무덤 앞에서 신나는 노래를 틀고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사람 역시 그리운 자가 자신과 함께 있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은 표정이었다. 이 사람들은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먼 길을 떠난 사람이 메리골드의 향기를 따라와 지금 내 옆에 있다고. 산뜻한 분위기가 더해진 공동묘지는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가 아니라 밝고 화사한 공원처럼 느껴졌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늘 무겁고 엄숙하게만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음이 꼭 무거울 필요는 없었다. 죽은 자가 지금 내 옆에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는 것도 죽음을 기리는 방법 중 하나였다. 나는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이를 환영하기 위해 온 마을이 잔치를 벌이는 모습을 보았다. 죽음의 한가운데인 공동묘지에서는 고귀한 사랑을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낯설고 무섭게만 느껴졌던 이들도 결국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이들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향해 뻣뻣하게 굳었던 마음은 어느 순간 몽글몽글하게 풀려 있었다. ‘죽은 자의 날’ 축제는 산 자와 죽은 자, 그리고 지구 반대편에서 온 나까지도 하나로 이어주었다. 그 연결된 끈 위에는, Amor(사랑)라는 단어가 메리골드 색으로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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