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삐 Jan 18. 2022

50. 출산 가방을 싸면서

#임신35주  #출산 가방 싸기  #엄마의 자격

#출산 가방 싸기

임신 35주가 되었다. 병원에 가서 막달 검사를 하고 입원 준비 안내를 듣고 왔다. 슬슬 출산 가방을 싸야 할 때다. 더 이상은 미룰 수가 없다.

트렁크 두 개를 꺼내어 하나는 병원용, 하나는 조리원용으로 용도를 구분했다.

병원용 트렁크에는 나와 남편이 병원에서 4박 5일 동안 생활할 짐을 싸고 조리원용 트렁크에는 내가 조리원에서 생활할 13박 14일간의 짐과 순둥이 용품을 넣는다.


[준비물]

ㆍ세면도구 등 : 칫솔, 치약, 세수 비누, 샴푸, 린스, 바디 워시, 기초 화장품

ㆍ속옷 : 팬티(5), 수유 브라(2)

ㆍ여벌 옷 : 레깅스(1), 요가 바지(2), 양말(3)

ㆍ생리대 : 맘스 안심 패드 2팩(16개입), 생리대 대형, 생리대 중형

ㆍ기타

  (전자제품) 휴대폰 충전기, 휴대폰 거치대, 멀티탭, 노트북

  (그 외) 수건 4장(병원), 각티슈, 텀블러, 빨대, 물티슈, 산후 복대, 가위, 칼, 옷걸이, 가습기, 머리띠, 손톱깎이, 디데이 달력, KF94 마스크

ㆍ아기용품 : 겉싸개, 손수건(20), 아기용 세탁비누


이 외에도 모유 저장팩, 유축 깔때기, 모유 촉진차, 비판텐, 단유용 양배추 크림, 단유 차까지 챙기는 꼼꼼한 산모도 있던데 당장 다 필요한 건지 모르겠다. 필요하면 그때 가서 인터넷으로 구매하기로 한다. 


오래전, 여행 가면서 너무 많은 짐을 싸는 바람에 여행 일정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고생을 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 이후로 가방을 쌀 때는 반드시 필요한 물품만 챙기는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출산은 처음이라 어느 정도로 짐을 챙겨야 할지 모르겠다. 초산 맘은 모든 게 어렵다.



#엄마의 자격

걱정을 또 미리 한다. 요즘에는 모유 수유에 대해서 걱정하느라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조리원에서 바로 단유를 하고 분유를 먹이려고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내 주변에는 출산 전에 완분을 결정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12개월을 넘겨서까지 모유 수유를 한 친구도 세 명이나 되고 모유가 나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분유를 먹였던 친구들도 최소 2~3개월은 모유 수유를 하기 위해서 고생 고생 생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흔들린다. 시도도 해보지 않고 분유를 먹일 생각부터 하다니…… 난 나쁜 엄마인가, 모성애가 없는 비정한 엄마인가, 엄마로서 자격 미달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분유를 먹인다고 아이가 잘 크지 않거나 면역력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분유를 먹인다고 엄마와 자식 간의 애착 관계 형성에 이상이 생기지도 않을 것이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먹이는 엄마 젖이 행복한 소 젖보다 더 좋을 리 없다. 분유 수유를 하면 남편이나 다른 가족에게 수유를 맡길 수 있어서 육아를 분담할 수 있고 매운 거나 단거나 상관없이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스트레스를 덜 받는 상태에서 육아를 할 수 있다. 그러니 아이의 정서에도 좋을 것이다(라고 기대한다).


내 아이에 대한 수유 방식을 정하는 일에도 남들의 시선을 생각해야 할까. 벌써부터 많은 생각을 하지 말자. 닥치면 어떻게든 되겠지.



#상실의 시간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출산 예정일이 가까워 오면서 그런 날이 더 자주 찾아온다. 점점 하기 싫은 것의 범위와 강도가 세진다. 이런 날도 있지 뭐, 그냥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 라는 생각으로 죄책감 없이 게으른 하루를 보내면 참 좋을 텐데…… 나 자신이 아무 쓸모도 없는 인간이 된 것 같아 무기력해진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하루 종일 이불속에서 뒹굴뒹굴하다가 저녁때가 되어 일어났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나는 잉여 인간이 된 것만 같아. 하루 종일 너무 무기력해.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왜 잉여 인간이라고 생각해? 지금 배가 커지고 몸이 불편해서 그렇지. 방역 패스 때문에 밖에 돌아다니 지도 못하고. 답답해서 더 그럴 거야.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있어."

"나는 자유를 상실했어. 순둥이가 태어나면 내 삶에 더 큰 제한이 있겠지. 정말이지 무용한 인간이 될 것 같아. 육아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육아를 하면서 삶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는 방법이 없을까?"

"그 시간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 마. 아이를 기르는 건 대단히 가치 있는 일이야. 내가 육아하는 모습 많이 찍어서 남겨둘게. 우리가 나중에 추억할 수 있도록"


육아를 하면서 내 시간을 생산적으로 쓰고 싶다는 내 욕심이 너무 큰 걸까.

그동안 쉼 없이 일하면서 이런 시간을 그토록 기대했는데 벌써부터 집 밖으로 나가서 일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돈도 벌고 싶은 이 마음을 어떻게 하지.


아이가 태어난 후 달라질 내 일과가 두렵기만 하다. 왜 다들 아이가 탄생하면 엄마의 인생은 없어진다고 말할까. 왜 엄마는 아이에게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을까? 아이를 위한 곳만 가고, 아이를 위한 소비에 집중하고, 아이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아, 벌써부터 지친다. 아이 때문에 인생이 바뀐다는 생각은 하고 싶지도 않다.

작가의 이전글 49. 서로에게 미안한 요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