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출산한 지 35일이 지났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출산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적어보고자 한다.
#조리원은 천국, 그 이상이었다.
듣던 대로 조리원은 천국이었다. 나는 출산병원에서 퇴원하고 바로 산후조리원에 입소했다. 출산과 동시에 여성성을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과 이제 한 여자의 인생보다는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출산 직후 약간 우울했었는데 조리원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부정적인 감정을 싹 다 잊어버렸다.
조리원 생활에 적응하기까지는 며칠 걸렸다. 남편과 헤어지고 배정된 방에 혼자 앉아있을 때는 눈물이 나기도 했다. 입소날 일정은 생각보다 바빴다. 내 방에는 신생아 브리핑, 식성 체크, 가슴 체크, 산모 바디 체크를 위해서 여러 사람이 드나들었다. 이후 2 ~ 3시간마다 울려대는 수유 콜과 유축의 무한반복으로 인간 젖소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푹 쉬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괜히 짜증이 나기도 했었다. 아기가 너무 작아서 안기도 겁나고 모유 물리는 건 어렵고 울 때는 어찌할 바를 몰라서 아기와 단 둘이 있는 모자동실 시간을 두려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삼일쯤 지나자 남편 없이 혼자 있는 시간이 꽤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편과 함께였더라면 모유수유하는 게 불편했을 것 같고 샤워도 매일 해야 했을 것 같고 유축도 구석에서 했을 것 같다. 하지만 남편이 없어서 거리낌 없이 옷을 벗고 아기에게 젖을 물릴 수 있었고 씻지 않고도 며칠을 버틸 수 있었다. 남이 해주는 요리, 청소, 세탁은 만족스러웠고 매일 받은 산후마사지는 황홀했다.
퇴소하기 며칠 전부터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언제 또 이런 대우를 받을까 싶어서였다. 주는 대로 잘 받아먹고 틈나면 잠을 잤다. 그동안 못 본 드라마도 실컷 봤다. 퇴소할 쯤에는 산후마사지 덕분에 몸의 부기가 거의 다 빠졌다. 입소할 때 체중은 출산 전에 비해서 8킬로그램이나 줄어있었다.
#남편의 육아참여와 아내의 산후우울증은 반비례한다.
특별히 sns에 출산에 대한 티를 내지 않았지만 언제쯤 출산하는지 알고 있던 친한 지인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 신생아를 돌보느라 힘들지 않으냐고 물어보는데 나는 아기를 낳고 힘들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늦은 나이에 아기를 낳아서 그런지 아기가 그저 예쁘기만 한 데다가 육체적으로 힘든 점이 없다.
남편과 나는 70:30 정도의 비중으로 육아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남편은 육아에 진심이다. 출산 전, 일 년 정도는 돈을 버는 대신 육아에 전념하겠다고 약속하더니 그 말을 실천하고 있다. 2주일 동안 남편의 체중은 2킬로그램 정도 빠졌다. 밤잠을 못 자서 그런 것 같다. 산욕기 까지는 밤에 아기를 보겠다며 아기와 거실에서 자고 나는 혼자 안방에서 잔다. 잘 먹고 푹 자니 몸의 회복이 빠른 것 같다. 다만 밥맛도 좋아져 살이 도로 찌고 있다는 게 고민이라면 고민이다.
남편은 어느새 분유 수유, 트림시키기, 재우기, 달래기 등 아기를 다루는 솜씨가 나보다 훨씬 능숙해졌다.
수많은 사람들의 출산 후기를 보면서 산후 우울증에 대해 미리 걱정했다. 평소에도 감정 기복이 심하고 감정적인 편이라서 더 그랬다. 그런데 출산 후 우울할 겨를이 없었다. 육아를 적극적으로 함께해준 남편 덕분인 것 같다.
그래서 감히 말하지만 육아에 있어 남편의 도움과 지지가 있다면 아내의 산후우울증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내는 아기를 낳고 바로 감소하지 않는 체중과 변해버린 체형(특히 들어가지 않는 배) 때문에 당황스럽기만 하다. 잘 먹어서 기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출산 전 체중을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에 밥 한 그릇 다 먹기도 부담스럽다. 게다가 출산 후 6개월 안에 다이어트를 하지 않으면 평생 체중이 빠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의 개소리와 출산 후에 살을 빼지 않으면 자기 관리를 못하는 여자라는 프레임을 뒤집어씌우는 주변 사람들의 이목 탓에 몸을 회복하기도 전부터, 아니 출산을 하기 전부터 다이어트 압박을 받는다. 변해버린 외모와 여성성을 거세당한 것 같은 상실감, 엄마라는 역할에 대한 부담감, 아기를 잘 키워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책임감으로 정신적으로도 힘든데 육아까지 혼자 맡아 육체적으로도 힘들면 아무리 씩씩하고 쾌활한 사람도 버텨내기 힘들다.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기를 돌보느라 먹을 것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고 밤에 잠도 못 잔다면 없던 우울증도 생길 것 같다. 그럴 때 남편이 육아를 함께 해주면서 아내의 고충을 경청하고 공감해준다면 아내들이 그렇게까지 힘들어할 이유가 있을까?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인가 봐.
임신 중 들은 말 중에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은 ‘뱃속에 있을 때가 가장 좋을 때’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에 공감하지 않는다. 굳이 비교하자면 임신했을 때보다 출산한 지금이 100배는 좋은 것 같다.
아기가 자주 울고 보채서 곤욕스러울 때가 있긴 하다. 특히 밤에 아기를 재울 때면 에너지가 다 고갈된다.
그런데도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훨씬 커서 출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안 든다. 천사 같은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을 때면 어떻게 내 뱃속에서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가 나왔나 싶을 정도로 행복하다. 특히 남편과 아기가 함께 놀거나 자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스럽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 아기를 낳은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보다 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한 것 같다. 직장에 돌아가면 더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도 아기를 보면서 하게 되었다.
조리원을 나오자마자 단유를 하고 분유로 아기를 키우겠다는 다짐은 어디 가고 매일매일 유축을 하면서 잘 나오지 않는 젖을 물리며 부족한 것은 분유로 보충을 하는 고된 혼합수유를 하고 있다. 그 작은 입이 내 가슴을 물고 오물오물하는 그 느낌이 너무 좋고 아기와 서로 가슴을 맞대로 있는 순간이 행복해서 쉽게 단유를 결정할 수 없다. 모유수유는 오로지 엄마만이 해줄 수 있는 일이라 더 끊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아기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던 내가 이렇게 변한 걸 보면, 모성애란 건 보통의 엄마라면 가지게 되는 보편적인 정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