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나는 없고 껍데기만 남았다
#출산70일 #산후우울감
요즘 새벽 한시쯤 우주가 잠에서 깨면 같이 일어나고 다시 잠을 못 잔다.
짧은 밤잠시간에 매일 꿈을 꾼다.
옛사랑이 나온다거나 지금은 연락조차 하지 않는 중고등학교 동창들이 등장해서 어색하게 지낸다거나
미로에 갇혀 탈출하지 못하거나
시험을 보는 꿈을 꾸는 등 꿈자리가 사납다.
꿈속에서도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으니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다.
나는 없고 껍데기가 남은 것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 같다. 기분전환을 위해 쇼핑을 한다. 장바구니에 옷, 신발, 화장품 실컷 담아두고는 아들과 관련된 물품만 사고 만다.
나보다 아들이 더 중요해진 게 당연하면서도 왠지 서글프다.
늘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였는데, 이제는 아주 작은 역할의 단역쯤으로 느껴진다.
나 자신이 쓸모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아기를 낳은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기가 울어서 달래지지 않을 때, 배고픈지 졸린지 또는 다른 이유인지 모르겠을 때 나는 엄마의 역할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 같다.
직장에 돌아가도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시어머니와 남편 사이가 애틋하니 애달픈 마음도 든다. 먼 훗날 나도 시어머니가 될지 모르니 그들의 말과 행동을 사사로이 넘기려고 해도 자꾸 곱씹게 된다.
아기를 보러 온다는 시댁 부모님의 방문이 달갑지 않다. 맡기고 나갔다오라는 말도 배려처럼 느껴지지 않고 빼앗기는 기분까지 든다.
아기를 보는 힘에 부치면서도 누군가의 도움도 받고 싶지 않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다 짜증이 난다.
그렇게 가끔씩 우울한 걸 보면 산후 우울감이 내게도 찾아온 것 같다.
시간의 위로는 당시에는 무용하지만 지나고 나면 언제나 옳았다. 이번에도 기대를 걸어 본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자연스럽게 내 마음도 따뜻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