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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삐 Aug 09. 2022

60. 아름다운 구속

생후 190일 육아일기

구속은 행동이나 의사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속박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구속은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니 즐겁고 아름다운 경험이라 말하기는 어딘가 어색하지만 요즘 나는 나의 우주에게 아름다운 구속하고 있다.


육아를 하는 모든 시기가 다 바쁘고 정신없이 지나가겠지만 최근 부쩍 다망해졌다. 낮잠을 자는 횟수와 시간이 짧아졌고 깨어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떤 놀이를 하면 금세 지루해한다. 흥미를 잃지 않도록 놀아주는 게 일이다.


일주일 전부터는 배밀이를 시작했다. 뒤집기를 시작하고 배밀이를 할 때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배밀이 방법을 터득하고 나서는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매일 다르다. 매일 기록 경신한다.


사물을 눈으로만 보는 시기가 있었는데 곧 손으로 움켜쥐기 시작했고 이제는 입으로 가져간다. 때로는 위험하게 탐색해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여기 저기 침을 발라 놓는 탓에 이불 빨래는 1주일에 한 번, 장난감 세척은 2일에 한 번씩 하는 것 같다.   


태어난 지 고작 6개월 된 작은 생명체는 주양육자인 엄마와 아빠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나와 남편이 보이지 않으면 불리 불안 증상을 보인다. 음마~ 하면서 울다가 점점 자지러지게 울어 댄다. 신생아 때에는 빨리 내가 엄마라는 걸 인식하고 엄마 껌딱지가 되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는데..

(그때는 내가 왜 그랬을까.)

 

좋고 싫음에 대한 감정을 확실하게 구분하고 표정이나 행동으로 드러낸다. 싫을 때는 표정을 찡그리고 허리를 뻗대고 울어젖힌다.


나와 우주에게는 동일하게 하루 24시간이 주어지만 우주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흐름이 다른 것 같다. 내 하루는 그저 화살 같이 빠르게 흘러가느라 뭘 하나 제대로 할 시간이 없는 반면 우주의 시간은 달팽이처럼 느리게 흘러 하루 사이에도 새로운 기술을 터득하고 연마한다. 만화 '드래곤볼'에는 '정신과 시간의 방'이란 장소가 나오는데 현실에서 1초가 흘러가는 동안 그 안에서는 6시간이 지나간다. 우주는 마치 그곳에 들어가서 수련을 하고 나오는 오천 같다고나 할까.


일주일 전만 해도 우주에게 떡뻥을 주면 스스로 먹지를 못했다. 내가  조각을 우주의 입에 넣어주 우주는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하다가 뱉거나 삼켰었다. 오늘은 우주에게 떡뻥을 주니 바닥에 엎드린 채로 떡뻥을 손에 쥐고 살짝 나온 아랫니 개로 야무지게 베어 물고 녹여 삼킨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체적으로는 힘들다. 하나도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평균 출산 연령이 늦어져서 마흔에 출산하는 게 흔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력이 달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낳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우주를 낳고 이런 게 행복일까 하는 생각을 자주 떠올리기 때문이다. 아기를 낳지 않았더라면 결코 느낄 수 없는 게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사는 게 행복하다는 기분이 드는 건 아마 생애 처음 드는 생각인 것 같다.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눈에 아른거리고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

아프면 내가 대신 아프고 싶고

항상 웃게 해주고 싶다.


확실하고 분명한 사랑을 하고 있다. 나이 마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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