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SKY라 불리는 대학을 나와 한국 대기업에 취업을 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런 대학의 간판이 아무런 효용이 없는 외국에서 나 스스로를 처음부터 증명해야만 하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의 졸업자들이다.
옥스퍼드, 캠브리지, 라이스대학, 텍사스 오스틴 등.
여기서 내가 나온 고려대학교는 그렇게 유명한 대학은 아닌거다.
솔직히 나는 내 동료들이 졸업한 대학을 알지만, 내 동료들은 내가 졸업한 대학에 대해 전혀 모른다.
영어로 Korea University여서 그저 한국에 있는 대학이라고 알 뿐이다.
여기서 나의 아이덴티티는 고대 출신이 아닌, 그냥 나의 실력일 뿐이다.
미국.
이 곳이 벌써 주재원 부임지로 여섯번째 국가다.
2004년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생활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내 커리어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주재원으로 생활했다.
한국에서는 남들이 말하는 것 처럼, 그저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삶을 살았다.
아침 7시 20분에 시작하는 학교 수업은 야간 자율 학습까지 밤 10시 20분에서야 끝났다.
그 땐 학교 급식이 없어서 도시락을 두 개씩 싸가지고 다녔다.
정말 별을 보고 학교에 가서, 별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삶이었다.
하루 일과가 그렇께 끝나면 담임선생님과 학생들 모두 이미 파김치가 되었는데, 친구들 대부분은 그 이후에도 학원이나 과외를 받으러 갔다. 선생님들은 우리들에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갈 확률은 거의 없다고, 서울 애들이 한 시간 공부하면 우린 두 시간, 세 시간 더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삶이 아니라 부트 캠프였다. 공부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성적을 위한 공부.
그래서 누군가 10대로 돌아가겠느냐고 하면 절대 싫다.
너무 고된 삶이었기에 그 부트 캠프를 다시 해 낼 자신이 없다.
그렇게 서울의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에(예전 지질학과) 들어갔다.
난 대학에 들어가면 뭔가 획기적으로 교육방법이 다를 줄 알았다.
대학의 공부는 고등학교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트를 영어로 한다는 것과, 영어로 된 원서와 논문을 본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면 차이였다.
공부하는 방식은 그냥 책을 보는 거. 그리고 외우는 거.
그게 다 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록금은 매우 비쌌다.
그 땐 사립학교니까 등록금이 비싼거라고, 다른 대학 등록금도 비싸고, 또 대학교니까 원래 학비가 비싼 거겠지 생각했었다.
내가 받는 교육의 질에 비해 학비가 적정한지 따져볼 생각은 전혀 해 보지 않았다.
이 대학을 나와서 졸업장이 주는 가격이 얼마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선생님들이 좋은 대학이라고 하니까, 부모님이 좋아하시니까, 그저 좋은 거겠지 했다.
말하자면 남들이 다 좋다고 하니까, 좋다고 믿은 거였다.
아마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것 같다.
학교와 학과를 정하면서 대학 입학정원과 입시 경쟁을 생각하지, 각 학교의 교수진의 교육및 연구 성과, 그리고 대학에서 제공하는 여러 체험의 기회를 대학별 입학금과 비교해 학교를 결정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학생회의 등록금 인상 반대에 동의를 하면서도, 가끔 강의가 휴강되면 좋다고 박수치는 게 어린 학생들의 심정이다. 부모님의 노고로 내는 그 비싼 수업료의 강의가 휴강을 하면 그게 도대체 얼마짜린인지, 강의료를 돌려받아야 하는 거 아닌지 따져볼만큼 그 누구도 그렇게 영리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 한국의 취업 시장에서 대학의 타이틀은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운 좋게 한국 대기업에 취직을 했고, 지금은 외국 기업으로 이직해서 일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2018년 싱가폴에서 주재할 때였다.
싱가폴 소재 대학에서 인턴을 받기로 했다.
내가 우리 회사의 인턴 채용 담당자여서 Nanayng Technology University (NTU)를 방문했다.
그 대학은 세계적으로 좋은 대학 선정에 30위를 차지하는 훌륭한 대학이다 (https://www.usnews.com/education/best-global-universities/search).
(*참고로 서울대는 129위, 고려대는 290위, 연세대는 292위다. 대학 순위는 평가 기관과 기준마다 달라진다)
NTU의 지구환경학과를 방문해 본 나는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내가 대학원 석사 과정에서 배웠던 것을 이미 학부과정에서 배우고 있었고, 학생수는 30여명 수준인데 교수는 10명 이상에, 진로 상담을 해주는 카운슬러가 아예 따로 있었다. 엄청난 실험기구들와 장비는 압도적이었다. 학생들은 직접 삼축압축 실험등을 하며 리서치 중심의 교육을 받고 있었고, 더욱 놀라웠던 것은 내가 만났던 교수님들이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성격, 학업 성취도및 관심도 등을 모두 꿰고 있었다. 학과 건물 복도에는 모든 학생 한명 한명의 사진과 활동하고 있는 전공 관련 연구, 봉사활동 내역, 동아리 활동과 취미등이 적힌 프로필이 늘어서 있었다. 특히 대학 교수들이 자신의 학생들을 우리 회사에 인턴으로 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었다.
"이 학생은 연구직보다 산업에서 일하는 걸 더 관심있어해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잘하고, 이미 앱도 개발했거든요."
"저 학생은 유머감각도 뛰어나고 매우 활동적이에요.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아 NGO에서 봉사활동을 이미 하고 있어요. 아프리카에도 연구활동 다녀왔어요."
교수님이 어떻게 학생 개개인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있고, 학생을 케어하는지 솔직히 너무 부러웠다.
학생 구성도 타국 학생들을 30%정도 받아 국제적인 다양성을 확보하려고 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대학때부터 외국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게 하여 어떤 국제적인 기업에 가더라도 외국인들과 친화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의도였다. 그래서 교수진들도 외국인 교수의 비율이 2/3 이상을 차지했다. 커다란 충격을 안고 돌아온 나는 이런 교육환경을 갖춘 NTU의 등록금이 얼만지 궁금해졌다. 외국인 교수들을 채용하려면 그들의 연봉에 주거 생활비 보조등이 들어가니까 학비가 어마어마하게 비쌀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물가 높기로 악명높은 싱가폴 아닌가.
2022년을 기준으로 NTU대학의 수업료는 싱가폴 국적 시민의 경우 1년에 S$8,250불이다 (https://www.ntu.edu.sg/admissions/undergraduate/financial-matters/tuition-fees/accepted-programme-offer-in-tf2022).
고려대의 2022학년도 수업료만 두고 봤을때 자연과학부 기준으로 학기에 4,201,000원, 즉 1년이면 8,402,000원에 달한다(https://www.korea.ac.kr/mbshome/mbs/university/file/2022_Registration_fee(univ).pdf).
세계 대학순위 30위권으로 싱가폴 NTU의 등록금이 한화로 1년에 8백만원 남짓인 것을 감안하면, 고려대의 학비는 매우 비싸게 느껴진다. 또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여러 국제적인 경험, 산학 협동관련 인턴 경험등을 두고 보면 우리 나라 대학의 학비가 과연 학생이라는 클라이언트를 얼마나 만족시키고 있을까 궁금하다. 내가 본 싱가폴의 NTU는 재학생이라는 클라인트들에게 최대의 기회와 양질의 교육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서비스 마인드를 갖춘 대학으로 느껴졌다.
한국의 대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대학들이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들었다.
한국이라는 시장에서만 알아주는, 그 들만의 리그의 명문대가 아닌, 국제적으로 진정한 경쟁력있는 명문대로 나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