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살 짜리가 본 불우이웃 돕기
날이 쌀쌀해지고 겨울이 다가 올때 쯤 항상 떠오르는 친구가 있다.
국민학교 (지금의 초등학교) 1학년때 같은 반 친구, 영주.
그땐 '가정실태 조사서'라는 게 있었다.
부모의 직업, 학벌, 수입, 살고 있는 집은 자가인지, 전세 혹은 월세인지, 그리고 가지고 있는 가전제품은 무엇인지를 적어내는 것이었다. 가정의 실태를 조사해서 학교에서 아이들의 학습을 더 잘 지도하겠다는 의도였겠으나, 실상 그 정보는 다르게 이용되었다.
차별.
아이들은 집에서 적어온 가정실태조사서를 서로 비교해 보면서 누가 더 잘살고 못사는지 학급 내에서 계층을 만들었고, 그 들 사이에서 차별을 만들어냈다.
또 아이들은 자신들이 나름 만들어낸 학급 내에서의 차별 사회에 대해, 선생님도 별로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든든한 배경을 가진 부모를 둔 학급 친구는 선생님으로부터 좀 더 특별한 대우 (같은 잘못으로 혼이 나도 좀 더 부드러운 톤의 목소리로 꾸지람을 받는다던가) 를 받았다.
학교는 나눔을 가르치려고 했다.
그래서 겨울이 다가오면 불우이웃돕기 성금 모금을 했다.
실제로는 거의 강제적이었다.
그 다음 날 준비물과 함께 성금도 가져오라고 주지를 받았고, 성금을 깜빡 잊고 안 가져오면 혼났다.
그렇게 학급의 성금이 모였다.
선생님은 그 성금으로 학용품을 사셨다.
노트, 연필, 크레파스등.
그리고 조회 시간에 우리 반에서 다들 성금을 모아 학용품을 샀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들에게 물어보았다.
그 선물을 누구를 도와주는 데 쓰면 좋을까, 누가 제일 가난하지? 라고.
그 어린 1학년 아이들은 모두 주저없이 '영주요!'라고 말했다.
모두 영주를 돌아보았다.
맨 뒤에 앉은 영주.
그 아인 우리 모두가 생각했던 가장 가난한 형편의 아이였다.
그는 항상 똑같은 그래서 그닥 깨끗하지 못했던 옷을 입고 있었고, 도시락도 가져오지 못했고, 학용품도 없었다. 항상 조용했고, 말이 없었고, 잘 웃지도 않았다.
초등학교 아이들만큼 가정 형편이 잘 드러날 수 있을까.
어른들처럼 스스로를 과장하거나 감추는 기교를 아직 터특하지 못한 아이들은 부모가 생계에 바쁘거나 혹은 돌아가셔서 안 계시면, 그 빈자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모두가 '영주요!'라고 외쳤을때, 선생님은 '그렇지, 영주!' 라며 모두의 추천에 동의를 하셨다.
선물 수여식을 위해 영주를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런데 영주는, 적어도 일곱살이었던 내가 본 영주는, 무척 슬퍼 보였다.
그 많은 학용품을 받고도 전혀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내키지 않은 모습이 역력했다.
그는 발을 질질 끌다 시피하며 앞으로 나갔다.
그의 얼굴에서 학급친구들과 선생님이 인정한 가장 가난한 아이로 보여진게 챙피했던 거 같다.
어쨌든 영주는 선물을 받았고 우리는 박수를 쳤다.
선생님은 뿌듯해 하셨다.
나도 박수를 쳤지만, 나는 영주의 슬픈 표정을 보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안함을 느꼈다.
그 때 일곱살엔 그 미안함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 일은 매년 이 맘 때쯤 생각이 난다.
그렇게 모두가 자기와 다른 그룹에 한 명의 아이를 세워 놓고 성금을 전달한게 과연 '나눔'이었을까.
그게 과연 나눔을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까.
어른이 된 지금, '나눔'이란 너나 나나 다 똑같은 처지라는 것을 일깨우는 것이다.
살다보면은 우리 모두 어떤 불우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는 거고, 어떤 이는 나보다 더 힘든 출발점에 서 있으나 언제가 내가 그의 도움을 받을 날이 올 지도 모르는 거라는 것.
그렇게 나누는 것이 결국 나에게도 이득이 되는 것이라는 것.
더 힘든 출발점에 서 있는 이도 남을 위해 사회를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그 도움에 기대는 게 '나눔'인 거 같다.
이제 어른이 되어 가끔 내가 만약 담임 선생님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본다.
나라면 먼저 영주가 학급과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볼 거 같다.
몸이 아픈 친구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기, 학급 게시판을 예쁘게 꾸미기, 그리고 학급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관찰해서 알려주기 등.
그리고 영주와 영주보다 훨씬 생활 형편이 좋은 아이를 같이 불러, '좋은 학급 만들기 프로젝트'에 도와 달라고 하겠다. 그리고 그 도움을 준 것에 감사하며 학급아이들이 성금으로 모은 학용품을 당당히 전달하겠다. 그랬다면 영주가 그렇게 슬픈 표정으로 선물을 받지 않아도 되었을 거 같고 아이들도 어떻게 돕는 게 나누는 것인지 같이 배울 수 있지 않았을까?
그 날의 박수를 쳤던 미안함에, 영주가 지금쯤 어디선가 정말 잘 되어 있기를 바란다.